제가 처음 사업계획서라는 것을 작성해 본 것은 약 5년전이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근무했던 곳은 연구소였는데, 회사에서 펀드를 모두 제공받아 연구만 하는 곳이 아니라, 독립채산제라고 해서, 연구를 하고 싶으면 회사 내 사업부를 찾아다니면서, 연구비를 지원받아야 했습니다.
독립채산제의 장점은, 돈이 되는 연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삽질 비슷한 연구(?)를 할 수 없었습니다. 반대로, 사업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 돈이 되는 연구꺼리를 찾아야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연구원들은 대리말년이나 초보 과장이 되면, 연구계획서 비슷한 것을 작성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업부에서 정량적인 결과가 없는 연구에 펀드를 제공하기 꺼려했기 때문에, 단순한 연구계획서라기보다 ROI 비슷한 형식으로 예상 효과를 작성했기 때문에… 사업계획서와도 비슷했습니다.
제가 과장을 처음 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부장님께서 새로운 연구사업계획서를 작성해 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입사하고 나서, R&D에 몰두했는데 갑작스레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라고 하시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습니다. 며칠 동안 머리를 뜯어가면서, 사업계획서 비슷한 것을 작성했는데, 뭐 초자 과장이 작성한 사업계획서 수준이 얼마나 높았겠습니까? 아무튼 부장님께 몇 번을 퇴짜 맞고나서야, 사업계획서 작성하기 놀이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습니다.
요즘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사업계획서를 처음 작성했을 때는, 출산의 고통보다 사업계획서 작성하기가 더 힘들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는데, 지금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면서 드는 생각은, 그깟 사업계획서야 키보드만으로 작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하하. 이렇다고 제가 마치 사업계획서의 달인처럼 보이는데,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사업계획서도 모든 계획서처럼 계획을 적어놓은 문서입니다. 방학이 시작할 무렵 30분 단위로 할일을 적어놓았던 여름방학, 겨울방학 일과표처럼… 사업계획서도 실천없이는 폐지로 전락할 A4용지일뿐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에 길이남는 불후의 명작들의 공통점은 제목이 몇 단어라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자면, 토지, 태백산맥, 삼국지, 초한지, 신곡… 처럼요. 물론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처럼 긴 제목을 가진 대작도 있지만, 극히 예외적입니다. 반대로 단편소설일수록 제목이 장황하게 길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편소설일수록 내용의 부족함을 눈을 끄는 제목으로 보완하려고 하고, 대작일수록 다양한 텍스트를 담고 있기에 장황한 제목으로, 그 내용을 담을 수 없기에, 짧은 제목을 갖는 듯합니다.
요즘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면서 드는 생각은 세계인들이 높히 평가하는, 비즈니스 모델일수록 그 사상이 무척 단순하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구글은 질 높은 검색서비를 제공하고, 그에 따른 광고수입으로, 아마존은 다양한 서적을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것으로써, BMW는 최고 품질의 차를 만들어서 사업을 영위합니다. 물론 단순한 사업모델이지만, 그 사업모델을 구동시키는 메카니즘은 복잡합니다(단순한 것과 쉬운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위대한 기업의 사업모델은 몇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마치 대작의 제목이 몇 단어로 표현되는 것처럼요.
그래서 제가 작성하는 사업계획서 안에 담고 있는 사업모델이 얼마나 짧은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이 듭니다. 사실, 별로 내용이 없고 실효성이 없는 사업모델일수록, 그 경박함을 감추기 위해 장황하고 이해할 수 없는 문장으로 채우는 것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하하. 이런 생각이 드니, 사업계획서 그까짓 것이라는 제 생각이 거시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