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냉장고를 만드는 곳에서 컨설팅했을 때 일입니다. 냉장고를 만들 때, 적용되는 기술수준에 따라서 등급을 매깁니다. 예를 들어, 기존 시장에 없는 완전한 새로운 개념의 냉장고를 S등급 냉장고. 예를 들자면 김치냉장고가 없던 십몇년 전에 김치냉장고를 만든다면, 김치냉장고 만드는 일은 S등급 프로젝트가 되죠.
이런 식으로 적용되는 기술 수준에 따라서 프로젝트 등급을 나누고, 마지막 등급이 제품 외관을 바꾸지 않고, 냉장고에 들어가는 부품을 바꾸는 프로젝트입니다. 이런 프로젝트의 목적은 대개 원가를 낮추기 위함이죠.
프로젝트의 등급에 따라서, 제품 개발 목표가 다르지만 아래 등급의 프로젝트에서 핵심은 대개 원가입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개발원가라는 것을 정합니다. 예를 들어, 올해 100만원을 들여 만든 냉장고라면, 설계를 개선하거나 부품을 교체해서 80만원에 냉장고를 만드는 거죠. 이런 작업을 회사마다 다르게 부르지만, 보통 CI(cost innovation), 즉 원가개선이라고 합니다.
CI를 하기 위해서, 설계자들은 무척 힘들죠. 소프트웨어 개발하시는 분들도 밤을 세지만, 제품 개발하시는 분들도 CI때문에 집에도 못가고 고생합니다. 예를 들어, 모니터 외관을 이루는 프라스틱 커버의 두께를 5mm에서 2.5mm로 줄일 수 있다면, 들어가는 원재료가 50퍼센트 절감되기 때문에 가격을 50퍼센트 낮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두께를 줄여 버리면 제품의 강도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강도는 5mm 수준으로 유지한채 2.5mm로 줄이기 위해서, CAE도구를 써서 해석(시뮬레이션) 작업도 하고, 브레인스토밍으로 다양한 구조를 생각해 내죠(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도 재미있지만, 이런 측면이 있기에 제품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도 재미있습니다).
제품을 개발할 때 목표원가는 다시, ‘설계원가’와 ‘구매원가’로 나뉩니다. 즉, ‘설계원가’는 설계자들이 설계를 바꿔서 달성하는 원가이고, ‘구매원가’는 구매부서에서 달성할 원가죠. 예를 들어, 이번 프로젝트에서 20만원을 줄여야 한다면, 설계팀에서 10만원을 줄이고 구매팀에서 10만원을 줄이도록 할당하는 게 설계원가와 구매원가입니다.
구매팀과 일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들이 어떤 식으로 원가를 개선하는지 잘 모르지만. 대충 어깨 너머로 들은 바에 따르면, 싸게 만들어 주는 공장을 찾거나 기존 업체와 네고나 다양한 구매스킬로 단가를 낮춘다고 합니다.
설계원가와 구매원가를 나눔으로써 목표원가를 맞추는 게 일반적인 제조회사에서 취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회사 전체로 본다면 설계원가나 구매원가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목표원가를 낮추는 게 핵심이죠. 하지만 설계팀과 구매팀으로 구성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목표를 나누게 된 셈이죠.
아무튼 이렇게 두 팀에서 원가개선 목표를 낮누기 때문에 일종의 눈치 싸움이 상당했습니다. 즉, 설계와 구매쪽에서 서로 얼마를 줄일 수 있는지 공개를 안하는 일종의 비협조 게임 상태에 놓일 때가 많습니다. 두 팀이 협력한다면 원가를 더 낮출 수 있는데도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제 지인 가운데 도요타를 싫어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보통 제조업체의 바이블이 도요타이기 때문에, 개선작업을 할 때 도요타를 벤치마킹합니다. 따라서 제조업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개선작업은 보통 도요타에서 힌트를 많이 얻습니다. CI분야에서도, 도요타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게 있는 데, 바로 포스트의 제목인
5퍼센트는 불가능해도 30퍼센트는 가능하다!
입니다. 이전 회사에서도 이 이야기를 무척 많이 들었는데요. 처음 들으면 무슨 이영표 헛다리 짚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저 이야기에 담긴 사상이 무척 깊습니다. 즉, 부품 업체에게 5퍼센트를 깎자고 이야기를 하면, 보통은 부품업체가 자신들의 이익을 줄여서 납품을 합니다. 즉, 납품을 받는 업체 입장에서 땡큐지만. 납품업체에서 참 거시기하죠.
그런데 도요타에서는 30퍼센트를 낮추자고 합니다. 아니, 이런 도둑놈보다 못된 일본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루 아침에 30퍼센트를 낮춰서 납품을 하란 이야기죠? 그런데 그 속사정은 이렇습니다. 만일 협력업체에 5퍼센트를 낮춰서 납품해달라고 하면, 부품업체는 자신들의 이익을 줄여서 납품하죠.
하지만 30퍼센트를 줄이자고 하면, 보통의 방법으로 달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접근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30퍼센트 줄이는 일을, 부품업체가 알아서 하라고 두는 게 아니라 도요타가 같이 한다는 이야기죠. 즉, 혁신적으로 단가를 줄일 방법을 두 업체가 머리를 맞대고 노력한다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유로 “5퍼센트는 불가능해도 30퍼센트는 가능하다!”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표면적으로 도요타를 따라할 수 있는 듯하지만, 그게 쉽지 않은 게 이런 구호 속에 깔린 상생의 정신, 즉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거죠.
상생이 중요한 시점에, 옛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봤습니다
* 몇 년전 이야기이기 때문에, 지금은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