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with Hani

로망은, 실현되리라!

Archive for February, 2009


서평: 번역의 탄생

Monday, February 23rd, 2009

어렸을 때부터 한국어 문법을 제대로 배울 기회는 없어도, 영어를 잘 말하는 것과 상관없이 영어 문법은 귀에 딱지가 내릴 정도로 수없이 배웠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영어 문법이 틀린 것은 잘 잡아내도 한국어 문법이 틀린 것은 잘 잡아내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사랑해!”를 영어로 옮겨보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I love you!”를 떠올릴 겁니다. 물론 조금 복잡한 문장을 옮기는 것은 영어 실력 차이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겠지만, “좋아해!” 혹은 “미워!”처럼 간단한 문장을 “like you”나 “hate you”로 옮기는 분은 없을 듯합니다.

하지만 “I love you”를 한국어로 옮겨보라는 주문에 한국어 문법에 적합한 번역을 하시는 분들은 흔하지 않을 겁니다. “I love you”를 한국어로 번역하라고 부탁하면, 대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로 옮기시죠. 물론 상황에 따라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로 옮길 때도 있겠지만,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를 떠올리면 대체로 “사랑해!”라는 말을 씁니다.

“I love you!”가 어떤 상황에서 쓰였는지 살펴봐야 하지만, “I love you”를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로 옮기는 번역은 100점짜리 번역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번역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좋은 번역은 의역인가? 직역인가?”하는 질문입니다. 직역과 의역을 이야기하려면, 직역과 의역을 정확하게 정의해야겠지만. 대체로 “I love you.”를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로 옮긴 문장을 직역이라고, “사랑해!”로 옮긴 문장을 의역이라고 부르는 데 동의하실 겁니다.

직역이 맞느냐 혹은 의역이 옳으냐는 번역의 역사만큼 오래되고 낡은 논쟁입니다. 즉, 좌우이념 논쟁처럼 논의가 진행될 때가 흔해서, 이 이야기가 나오면 자신의 견해만 주장하거나 확인하면서 끝날 때가 잦습니다. 저도 번역하면서 직역이 좋은지, 의역이 나은지를 두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앞으로 경험에 따라서 지금 생각이 바뀔 수도 있지만, 일단 현재 제가 생각하는 좋은 번역은 의역에 가까울 듯합니다.

그런데 의역이라고 말하면 상당한 오해를 부를 수 있습니다. 안정효 씨는 번역의 공격과 수비에서, 똑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의역을 번역의 공격이라고 정의했고 직역을 번역의 수비라고 정의했습니다. 즉, 상황에 따라서 원문을 살려서 옮길 때도 있고, 한국어로 완전히 풀어낼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좋은 번역은 의역이라고 말하면, 번역의 복잡한 면을 담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남습니다.

이런 위험성에도, 제가 좋은 번역은 의역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영문법 구조를 살리는 직역의 풍토가 번역세계에 만연하기 때문이죠. 즉, “I love you.”를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로 옮기는 게 이상하지도 않고, 매우 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희재 씨가 쓴 ‘번역의 탄생’은, ‘의역’과 ‘직역’의 문제에서 시작하는 책입니다. 20년이 넘는 내공이 있는 전문번역가의 고민이 담긴 책이기 때문에,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면서 작가가 생각하는 좋은 번역의 모습을 제시합니다. 물론 좋은 번역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지만. 번역을 한 번쯤 해보신 분들이거나 좋은 번역이란 무엇일까 고민하신 분들이 보시면, 도움을 많이 받으실 수 있습니다.

실전적인 번역 지침서로서 제가 읽은 번역관련 서적 가운데 가장 좋은 책인 듯합니다.

서평: 기획에는 국경도 없다.

Wednesday, February 18th, 2009

기획이란 무엇일까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는 내는 총괄적인 행위도 기획일 것이고, 오래 전부터 존재했지만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해서 창고에 있던 제품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기획이겠죠.

그런 의미로 요즘 가요계의 큰 흐름인 후크송도, 새로운 시대의 대중가요 맥을 찾다보니까 나온 기획의 산물이겠죠. 하지만 후크송이 대세라고, 일단 후크송 비슷한 것을 만들어내야 팔린다는 생각에 제2의, 제3의 소녀시대 그룹을 만들어내는 것은 진정한 기획이 아닐 겁니다. 시장이 상큼한 Gee를 외칠 때, 장기하의 노래 같은 눅눅한 마이너의 정서도 있다는 것을 대중에게 알려주는 게, 바로 기획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출판계에서 일하시는 분이나 출판을 꿈꾸는 분들이라면, 강주헌씨가 쓴 기획에는 국경도 없다에서 출판 기획의 큰 맥을 파악할 알찬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이라도, 기획과 관련된 아이디어가 많아서 도움이 되실 겁니다.

전문가

Tuesday, February 17th, 2009

두 달 전에 램브란트 전에 다녀왔습니다. 프로그램을 자세히 살피지 않아서, 램브란트 작품만 전시하는지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실 램브란트의 작품은 ‘나이 든 여인의 초상화’라는 채색화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에칭 판화였습니다. ‘램브란트 전’이라는 이름 때문에 낚였다는 분들도 있지만, 전 램브란트의 에칭 판화를 본 것만으로도 대만족이었습니다.

램브란트 작품

항변파의 설교자 얀 위텐보게르트의 초상, 에칭

에칭 판화의 크기는 어른 손바닥 크기 정도였지만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교함에 숨이 막힐 정도입니다. 판화의 세부 요소인 ‘면, 질감, 명암, 공감감’을 만들어내는 수많은 선 가운데, 아무 의미 없이 그려진 선을 평범한 제 눈으로 도저히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램브란트의 에칭 판화를 보면서, 위대한 예술은 치밀한 기술을 기반으로 삼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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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파일러가 똑똑해서 개떡같이 코드를 짜도, 찰떡같이 최적화된 바이너리 파일을 만들어준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지만. 그래도 진정한 고수가 짠 코드 속에서, 군더더기 코드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컴파일러가 똑똑해서 최적화된 바이너리를 만들어내도, 고수는 바이너리와 문제영역을 넘나들면서 코드를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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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란 내용도 뛰어나야 하지만, 내용을 담아내는 문장이 치밀해야 합니다. 문장이 치밀하려면, 맞춤법이 맞아야 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며, 문장의 뜻에 오류가 없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한겨울 달도 저문 새벽에 나는 집을 나왔다.”라는 문장은 맞춤법에 오류가 없지만, 완전히 틀린 문장입니다. 한겨울에는 보통 자정 근처에 달이 떠서 아침 나절에 달이 지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이나 지식이 깊은 분들이 써놓은 글을 읽다보면, 글이 잘 읽히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배경지식이 짧아서 독해가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생각을 담아내는 문장이 치밀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움의 깊이가 중요하지, 그것을 담아내는 글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릇 지식인의 최종 산출물은 글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문장이 치밀하지 않은 글을 남발하는 것은, 대충 코드를 짜도 컴파일러가 최적화를 해 줄 것이라고 믿는 개발자와 다름 없습니다.

작전

Sunday, February 15th, 2009

작전

극전인 반전이 있는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전개가 지루하지 않아 재미있었습니다. 극중 캐릭터와 잘 맞아 떨어지는 배우의 연기도 일품이었고, 조폭을 맡은 조연들의 연기가 특히 괜찮았습니다. 광고에서는 장르를 스릴러 영화라고 말하지만, 개인적인 느낌은 배우들이 ‘대사 치는 맛’이 맛깔스러워서 잘 만들어진 멜로(?) 드라마에 가까운 듯합니다. 그리고 주식에 관한 영화지만 주식을 전혀 몰라도 감상하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간단한 감상은 여기까지고요. 전 이 영화를 보면서, 슘페터의 기업가 정신이 떠올랐습니다. 자본주의에서 돈이 전부이지만, IMF이후 우리 사회는 돈이 만능인 사회가 되었습니다. 물론 기업을 일으키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목적이 먹고 사는 일이기 때문에, 돈을 빼놓고 자본주의를 이야기할 수 없지만.

하루 아침에 몇 천억 혹은 몇 조의 시가 총액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면 조금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주식시장 덕분에 기업들은 자본을 쉽게 조달받지만, 금융자유화가 지나치게 진행되다 보니까, 현실과 금융 사이에 괴리가 커지고… 그런 결과로 오늘날의 금융위기가 발생했죠. 어떤 양반은 이 시기가 지나면 금본위 제도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게 정답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기업을 일으키는 목적이 돈이기는 한데, 주식시장이 활성화되고 어느 순간 전국민이 투자자가 되다 보니까 어떻게든 빠른 시간에 투자를 회수하는 게 목적이 되었습니다. 즉, 어떻게든 돈을 버는 게 목적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슘페터가 말한 기업가 정신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인생 한방을 노리는 야바위꾼만 보이는 게 현실입니다. 물론 지금도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채, 무한 도전을 하시는 사업가들도 있지만요. 그 수가 과거와 비교해서 얼마나 될지는 의문입니다.

기업가 정신이 사라진 재벌 2세와 그의 주위에서 한탕을 노리는 사람들, 그리고 단기적 수익을 노리는 개미들이 합작해서 큰 한판을 버리는 게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인데요. 어떻게 보면 금융선진화라는 명목으로 벌어지는 요즘 투자 세태를 반영한 것 같습니다. 투전판보다 더 정신없는 주식 작전은 한여름밤의 꿈처럼 사라지고, 영화가 끝납니다. 마지막 장면이 끝나자마자 영화관을 나오면, 그냥 잘 만든 영화 한편을 본 셈인데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조금만 참고 보시면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들은 생각이 바로 슘페터의 기업가 정신이었습니다. 더 자세한 것을 이야기하면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