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February, 2009


일반해와 특수해

Saturday, February 14th, 2009

아인슈타인은 가속도가 존재하지 않는 등속운동 환경을 가정해서 특수 상대성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엔 눈에 보이지도 않고 평소에 잘 느끼지도 못하지만 중력가속도가 항상 존재합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이 가정한 가속도가 없는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에, 특수 상대성 이론은 숨이 막힐 정도로 멋지지만 뭔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이런 약점을 없애고자,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고 10년 동안 머리를 뜯어가면서 연구에 매진한 결과. 가속도가 존재하는 진짜 세상으로 특수 상대성 이론을 확장해서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즉, 절대공간과 시간이라는 가정으로 뉴턴이 만들다 손을 놓아버린 뉴턴 역학 위에, 아인슈타인은 따로 국밥의 세상인 공간과 시간을 엮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인류에게 선물했죠.

대학원 과정에 진학해서 석사논문을 쓸 때, 처음엔 거창한 연구 테마를 찾습니다. 아는 것은 별로 없어도 주위에서 주워 들은 것은 많기 때문에, 눈이 높아져서 왠만한 논문 테마는 성에 차질 않죠. 하지만 논문 제출 마감 기한이 다가올수록 시간 압박에 시달리고, 결국 연구실 선배가 제출했던 논문 가운데서 건드리지 않은 작은 테마를 찾아서 열혈모드로 논문을 써내려 갑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시간과 열정을 쏟아서 쓴 논문이지만, 석사 논문은 대개 ‘OOO경우를 고려한 OOO분야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이 붙는 특수해가 되는 경우가 흔하죠.

물론 석사 학위의 공력으로 세상을 꿰뚫어내는 일반론을 만들기란 불가능에 가깝고, 박사 학위가 있어도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 분야에서 모든 경우를 아우르는 새로운 일반론을 내기란 매우 힘들죠. 그렇다고 일반론을 만들어내고 싶은 연구자들이 ‘내가 만든 이론은 모든 현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일반론’이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했다가 같은 밥을 먹는 동료들의 철저한 응징과 조롱을 받기 때문입니다.

엄격한 연구자세가 필요 없는 일반 사회에서 특수해가 일반해로 변질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특히 개인이 일상 생활을 하면서 경험하는 것을 토대로 이야기할 때, 특수해가 일반해로 변질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A와 B가 전철을 타고 가는데, 이 사람들 앞에 자리가 났죠. A가 자리에 앉을려고 뒤돌아서는데 바람처럼 한 아주머니가 달려오셔서 A의 자리를 뺐습니다. 자리를 차지한 아주머니는 A와 B에게 능글맞은 웃음을 보이면서 눈을 감고 잠을 청합니다. 이 상황에서 B는 A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여간 우리나라 아줌마들은 왜 이렇게 염치가 없지.

평소 논리적인 A는 B의 말에 이렇게 반응합니다.

앞에 있는 아줌마가 염치가 없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 아줌마 사례를 들어서 우리나라 아줌마들이 모두 염치가 없다고 말하는 건 조금 이상하지 않아?

경험을 통해서 생기는 편견은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프레임을 제공하기 때문에 생활에 유용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이 오랜 경험으로 형성한 편견은 일종의 특수해입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특수해를 일반해로 성급하게 전환해 버릴 때, 문제가 많이 생깁니다.

공각기동대

from 공각 기동대

저도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가끔 논쟁이 붙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는 대개 제가 경험한 특수해를 일반해로 간주하고 이야기하는 경우입니다. 특수해인데 일반해로 이야기해 버리고 나면, ‘아차! 실수했네’하는 후회가 듭니다. 지금은 과거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했을 때 쉽게 파악하고, 그러지 않을려고 노력하는데, 저도 사람인지라 가끔 실수를 합니다.

생활 속에서 엄격한 과학자의 자세를 견지하기 힘들겠지만, 서로 다른 특수해를 두고 일반해라고 우기는 논쟁을 피하려면, 어느 정도 겸손한 연구자의 마인드가 필요한 듯합니다.

디테일

Thursday, February 5th, 2009

명절이나 연말연시에 받는 안부 문자 가운데 기억에 남는 문자들이 있습니다. 즉, 말머리에는 제 이름이나 호칭이 적혀 있고, 저와 관련된 개인사를 챙겨주는 내용이 있는 문자 말입니다. 물론 그룹 전송으로 많은 사람에게 뿌려지는 문자는 보내는 사람 입장에서 확실히 편합니다. 하지만 제 이름을 넣고 근황을 챙기는 문자를 보노라면, 저를 생각하면서 한 글자씩 입력했을 사람이 생각나서 100바이트가 넘지 않는 작은 데이터지만 그 감동은 1기가를 넘습니다.

처음 접하는 서류를 작성하면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서류를 처리하는 담당자는 일주일에 2~3번 정도 보기 때문에, 익숙하죠. 그래서 담당자는 업무를 처리하러 온 사람들에게 아무 설명도 없이, 자신에게 익숙한 서류를 건냅니다. 서류에 있는 항목들이 이해하기 쉽다면, 그래도 다행이지만 항목이 뜻하는 바가 애매할 때, 서류를 작성하는 입장에서 참 난감합니다.

하지만 어떤 담당자들은 서류를 작성하는 사람들이 혼란을 겪을 것을 예상해서, 서류를 넘겨주면서 친절하게 어디에 무슨 내용을 적어야 하는지 설명해줍니다. 특히 서류를 작성하는 곳이 관료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곳이었다면, 그런 친절한 담당자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소소한 것이지만, 일상에서 디테일이 숨쉬는 서비스나 도움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물론 디테일을 챙기는 것은 사람의 성격 탓일 수도 있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디테일이 있는 행동을 하려면, 자신이 대하는 일이나 사람에게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즉, 일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늘 반복되는 서류 작업은 그냥 처리할 업무이기 때문에, 작성자를 배려하는 디테일이 살지 않습니다.

단순한 서류 작업을 예로 들었지만, 우리가 접하는 업무도 큰 틀에서 비슷합니다. 프로젝트 제안서 작성에 도가 튼 사람이라도 열정이 없다면, 고객의 마음에 들만한 디테일이 살은 제안서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죠. :) 오늘 포스트를 계기로, 제 삶에 어떤 디테일이 있는지 살펴봐야겠습니다.

출판, 작은 도움말

Monday, February 2nd, 2009

블로그에 글이 하나씩 쌓이다 보면, 글쓰기 실력이 느는 것을 느끼는 분들이 많죠. 게다가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본인의 이름으로 된 책을 갖기를 바라시죠. 저도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번역과 출판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습니다.

저보다 앞서서 책을 내신 분들도 있고, 저보다 훨씬 많은 책을 저술하신 선배님들이 있기 때문에, 출판이란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늘어놓기가 민망하지만. 첫 출판이라는 경험이 아직 빛 바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제가 정리한 생각이 출판을 꿈꾸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출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한 가지 적어봅니다.

출판을 고려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첫 번째 독자는 누구일까요? 내가 쓴 책을 읽을 주요 독자층이 첫 번째로 고려해야 할 독자라는 생각이 들지만, 제 경험상 보면 출판사 관계자분들입니다. 물론 최종적으로 내 책을 사볼 사람은 독자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잠재적인 독자를 고려해서 책을 내야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출판이 됐다고 가정한 생각입니다.

즉, 출판사에서 내가 쓴 원고를 멋진 책으로 만들어서 인터넷 서점이나 오프라인 서점에 내놓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인 셈입니다. 따라서 첫 번째 독자는 출판사 관계자분들이고, 이 분들을 매료시킬 정도의 원고가 아니라면, 세상을 뒤바꿀 원고라도 음침한 하드디스크 위에 저장된 바이트일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출판 관계자분들이 내가 쓴 원고에 홀리게 만들까요? 멋진 아이디어를 엄청난 필력을 동원해서 원고로 만들어낸 다음 출판사에 보낸다면, 출판으로 바로 이어질까요? 여유가 있는 출판사에서 그런 원고를 출력해서 읽고 여러분에게 전화를 준다면 다행이지만, 출판사도 하나의 회사이기 때문에 편집자분들이 할 일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책 출고, 편집, 수금, 마케팅 등, 일반 회사처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시죠.물론 새로운 원고를 보고 아이템을 발굴하는 기획업무도 중요하지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편집자분들을 원고를 쉽게 검토하도록 도와준다면 출판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따라서 출판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한다면, 멋진 아이디어를 원고로 작성하기 전에… 기획서를 가장 먼저 작성해야 합니다. 출판 기획서에는 대략 컨셉(주제), 벤칭마킹 서적, 예상 독자층, 마케팅 포인트, 계약 조건이 들어가야 하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반드시 목차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목차를 잡으면 원고의 흐름을 대략적으로 파악하는 데, 편집자분들이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기획서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원고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샘플 챕터를 한 장정도 작성하는 것도 좋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줄이고, 다음에 시간 나는대로 출판하면서 느낀 점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