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학습
Wednesday, March 25th, 2009첫 회사에서 입사하고 나서, 제가 맡았던 일은 전자제품 설계자들이 설계할 때 사용하는 시스템을 만들거나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프로젝트에서 PL이었죠. 입사하고 나서 4년이 지났을 때, 제가 몸담았던 조직에서는 신규 사업 아이템으로서 설계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주하려고 계획했습니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지만, 조직 구성원들이 대부분 시스템을 만들거나 설계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조직이 나아가려는 방향과 기존 구성원의 캐리어가 맞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원래 있던 인력을 모두 다른 곳으로 보내고 나서, 새롭게 뽑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격다짐 비슷하게 기존 인력이 컨설팅 프로젝트의 컨설턴트로서 참여해야 했습니다. 제 전공은 다행히 기계공학이었고, 4년 동안 시스템을 만들면서 설계자들이 어떤 식으로 설계하는지 배웠기 때문에, 컨설턴트로 참여해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해도 밥벌이 정도는 할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시스템 개발자나 PL역할에서, 설계 컨설턴트로 변신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습니다. 즉, 실력이야 차치하더라도 마인드가 개발자였기 때문에, 단시간 안에 손바닥 뒤집듯이 컨설턴트로 변신한다는 게 상당히 힘들었죠. 반년이 넘는 짧지 않은 프로젝트 기간 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습니다. 물론 심리적으로 그다지 유쾌한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그 프로젝트 덕분에 얻은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완전히 새로운 일이 제게 떨어져도 그다지 심리적인 부담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전에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면, 당연히 잘되지 않겠지만 어떻게든지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그 프로젝트 덕분에 깨달았죠. 다음으로 배운 것은 기간이 촉박하고 처음 접하는 분야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상황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 단기간에 학습(?)하는 방법입니다. 학습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자료를 읽고 오랫동안 고민하고 근본원리를 파악하는 형태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성과를 내는 데 필요한 수박 겉핥기 식 학습이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인드와 수박 겉핥기 식 학습 마인드가 있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물론 저도 이 분류에 속할 때가 있습니다. 수박 겉핥기 식 학습은 단기 성과를 내는 데 좋을지 모르지만, 개인의 성장과 장기적인 실적에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즉, 결과를 내는 데 급급하기 때문에, 수박 겉핥기 식 학습 마인드에 빠진 분들은 “왜, 그렇죠?”라는 질문을 2번 정도 던지면 대답을 잘 못하시죠. 따라서 시류에 편승하는 결과를 내놓을 수 있어도, 시대를 앞서가는 혁신을 이끌기란 불가능합니다.
아무튼 컨설턴트로서 활동했던 프로젝트 덕분에, 전 수박 겉핥기 식 학습 마인드에 빠져서 한동안 학습을 멀리한 채, 성과 내기에 급급했습니다. 수박 겉핥기 식 학습 마인드로 수행했던 프로젝트 몇 건에서 제가 얻은 건 무엇일까요? 하나는 ‘일 잘한다는 칭찬’과 ‘속이 빈 중국호떡을 먹은 뒤 생기는 공복감 비슷한 지적인 배고픔’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일을 하면서 성과도 고민하지만, 학습에도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성과만 생각했을 때보만 에너지가 더 필요하죠. 그래도 지금 쏟는 에너지가 수박 겉핥기 학습에 빠져 먼 미래에 더 큰 낭패를 보는 것도 낫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학습에 더 익숙하시나요? 일과 학습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고 계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