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사
Friday, July 24th, 2009IBM developerworks에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인터뷰 결과를 술술 잘 읽히는 기사로 바꿔 주신 송우일 기자님, 고맙습니다.
IBM developerworks에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인터뷰 결과를 술술 잘 읽히는 기사로 바꿔 주신 송우일 기자님, 고맙습니다.
장하늘 선생님의 책이 유익한 이유는, 글쓰기와 관련된 여러 가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책 한장을 넘길 때마다 만나는 새로운 단어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문장력 높이기 기술’에서는 아래의 단어들의 용례를 배웠죠.
이런 단어들이 있다는 것에만 멈춰서는 안되겠죠. 알았다면 어딘가에 사용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런 단어들이 신선하지만, 이 단어들이 사용되는 문장이 단어 의미를 충분히 녹아내지 못한다면, 단어를 사용하고 나서 단어 뜻을 각주로 달아주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장하늘 선생님의 책에서도 접하게 됩니다.
물론 한국어를 잘 쓰고, 글을 잘 쓰자는 취지의 책에서 생소한 단어를 봐도, 공부하는 셈 치고 각주를 살피는 노력을 하죠. 하지만 좋은 글쓰기 이외의 정보를 전달하려는 글에서, 생소한 단어를 쓴다는 것은 글을 읽는 이에게 부담을 많이 주는 행위입니다.
한국어를 사랑하는 분들 중에서, 되도록이면 모든 단어를 토박이말(순수한 한국어 단어)를 사용해서 써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토막이말 중심으로 쓴 문장을 읽는 일은, 외국어를 독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글의 중요한 목적인 정보 전달보다는, 한국어의 순수성을 강조하면서 생기는 폐해라고 생각하는데요.*
과연 토박이말 위주로 문장을 구성하는 것이, 진정한 한국어 사랑일까요? ‘순수성’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순수성’ 이면에는 혼혈이나 다른 것을 배제하려는 ‘분리주의’가 스며들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무척 위험한 개념이기도 하죠. 잡초가 무성한 잔디밭에서 잡초를 솎아내려고 살포하는 제초제처럼, 한국어를 혼탁하게 하는 외래어들을 말끔하게 뽑아낸다면, 한국어는 수정보다 더 맑아질까요?
사실, 언어의 본질을 생각해 본다면, 언어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입니다. 이런 주장은, 제가 처음하는 것도 아니죠.
고종석씨가 쓰신 감염된 언어를 읽어보면, 언어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염된 언어의 한장인 ‘섞임과 스밈 -언어순수주의에 거는 딴죽’에 언어순수주의 문제점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혹시 관심 있는 분들은, 책 전체가 아니더라도, ‘섞임과 스밈…’ 장을 읽어보세요.
이런 글을 쓴다고, 토박이말을 쓰려는 노력이 부질없다는 것을 폄하하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는 번역과 책을 쓰면서, 한국어를 한국어답게 쓰는 게 가장 아름답고, 얼음 송곳처럼 냉철한 이성이 필요한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토박이말을 쓰려고 노력하는 것을 높게 평가하죠. 다만, 그 정도의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토박이말을 써야할까요? 사실, 이 질문에는 절대 정답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정답도 없는 질문을 던지는 부질없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이런 질문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고 생각할 것을 주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의미있는 듯합니다. 이런 이유로 정답은 아니지만, 제가 평소에 생각하는 좋은 토박이말의 예는 이렇습니다. 즉 단어를 들었을 때, 단어가 뜻하는 바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게 좋은 토박이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귀에 많이 익어서 크게 이상하지 않지만, 아직도 저는 ‘참살이’가 ‘wellbeing’의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는지 의문스럽니다. 하지만 ‘노견’이라는 단어보다 ‘갓길’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 ‘갓길’이 의미하는 바가 더 잘 그려지죠. 토박이말이 외래어가 담고 있는 사상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다면, 토박이말은 모진 시간의 비바람을 이겨내고,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서 사용되겠죠. 반대로 한국어 순수성이라는 가치 아래, 부득이 바꾼 토박이말은 그리 오래 사람들 뇌리에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잡초를 제거하려고 무차별적으로 뿌린 농약이 화단의 꽃들도 죽일 수 있듯이. 언어의 순수성만을 강조한 채 토막이말 사용을 강제하는 것은, 한국어를 빈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어를 사랑한다면, 언어의 순수성을 강조하기보다 순수하지 않지만 한국어를 건강하게 살찌게 할 방법을 고민해 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 물론 “판타스틱하고 엘레강스하며, 뷰티풀한 프라이데이 나이트에요.”라고 쉽고 귀에 쏙 들어오는 토박이말이 있는데도, 외래어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도 문제죠.
예전에 다니던 회사의 직급 체계는
- 사원-연구원
- 대리-주임연구원
- 과장-선임연구원
- 부장(차장)-책임연구원
이렇게 구성됐죠.
진급자 축하 회식에서, 진급자 한 분이 직급의 뜻을 물었습니다. 주임, 선임, 책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렇게 불리기도 했지만, 정확한 뜻을 잘 모르겠다고, 진급한 의미에서 그 뜻을 알고 싶다면서 직급의 의미를 구했습니다. 질문을 들은 선임연구원 한 분이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제 생각에는, 주임은 신입사원을 벗어나서 회사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고 일하라는 뜻에서, 즉 주인 의식을 갖고 일하라는 의미이고, 선임은 먼저 나서서 일을 하라는 뜻에서, ‘책임’은 의사결정을 책임지고 내리라는 취지에서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닐까요?
이 대답을 들은 책임연구원이, 선임연구원이 말씀하신 직급 테제에 대한 ‘안티테제’를 주장하셨죠.
(웃으면서) 그런 긍정의 뜻도 있는데, 대개 주임들을 보면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주인 의식’ 없이 일하고, 선임들은 일이 많아서 절대로 ‘먼저 나서지’ 않고, 책임들은 직장생활 오래해 보려고 절대 ‘책임’질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