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September, 2009


‘겸손한 개발자가 만든 거만한 소프트웨어’ 책씻이 뒷이야기

Wednesday, September 30th, 2009

‘겸손한 개발자가 만든 거만한 소프트웨어’의 책씻이를 어제서야 했습니다. 출간하고 나서 6개월이 지나고 나서 한 책씻이였는데요. 인사이트 사장님과 편집부장님을 오랫만에 만나뵈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게 있습니다.

두번째 책의 제목인 ‘겸손한 개발자가 만든 거만한 소프트웨어’는, 제가 기획서를 작성하면서 붙인 가제였습니다. 두번째 책의 모티브는 첫번째 책인 ‘도와주세요! 팀장이 됐어요’를 쓰면서 얻었습니다. ‘도와주세요..’에 나오는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인 김성실의 캐릭터를 잡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김성실이라는 캐릭터는 무척 성실하고 착한 개발자인데, 이런 개발자들이 만든 소프트웨어는 왜 쓰기 불편할까?하는 의문 말이죠.

첫번째 책 컨셉은 초보팀장에게 들려주고 싶은 관리비법이었기에, 김성실 캐릭터를 잡으면서 들은 의문은 첫번째 책을 끝낼 때까지 잠시 덮어두었습니다. 첫번째 책을 마무리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겸손한 개발자가 만든 소프트웨어가 거만해지는 이유를 분석하고 그 해결책을 궁리한 결과가 두번째 책으로 탄생했습니다.

인사이트와 작업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인사이트 편집부의 품질 기준은 무척 높습니다. 기획서를 완벽하게 작성하려고 노력했지만, 두번째 책에 대해서 다양한 피드백을 받을 것을 각오했고, 인사이트에서는 기대에 부응하는 여러가지 요구를 하셨죠. :) 그런데 신기한 것은, 가제로 붙인 책제목이 정식 책제목이 되더군요. 가제였지만, 제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는 최선의 아이디어였기 때문에, 저도 그다지 불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사장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시더군요. “혹시 책 제목을 사일로를 파괴하라!로 지었다면 어땠을까요?” 제 주변에는 책 제목만 보시고, UX에 관련된 이야기를 다룰 것이라고 생각하셨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책에서 사용자와 GUI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UX가 중심 키워드는 아니였습니다. ‘겸손한 개발자…’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핵심은 아마도 ‘의사소통’일 겁니다.

인사이트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사일로를 파괴하라!’라는 제목은, 책에서 주요하게 다룬 게 의사소통이기 때문에, 의사소통을 중심으로 책의 컨셉을 잡았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겠죠. 이 질문을 받자, 저도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이 덧없지만, ‘사일로를 파괴하라!’라는 책 제목으로도 괜찮은 책이 나오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에디터쉽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은 작가에게 달려 있지만, 콘텐츠가 말하려는 바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새로운 시각을 부여하는 편집자를 만난다는 것은, 작가로서 무척 행복한 일인 듯합니다. 그렇죠. 확실히 스티븐 킹이 이야기했듯이, 편집은 신의 영역입니다. ;)

어제 책씻이는, 책에 대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했고, 새로운 책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도 얻는 유익한 자리였습니다. 인사이트 사장님, 부장님 감사합니다~

누끼마녀와 아웃소싱

Wednesday, September 23rd, 2009

잡지 ‘디자인’ 7월호에서 재미난 컬럼 하나를 읽었습니다.

누끼를 기가 막히게 잘 따는 여성 디자이너 한명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포토샵에서 누끼를 따는 일반적인 방식인 ‘패스(path)’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메뉴를 독창적으로 사용해서 누끼를 땄죠. 고슴도치 털 같은 고난위도의 대상도 한치의 오차 없이 정밀하게 누끼를 땄습니다. 전 그 여성 디자이너를 ‘누끼마녀’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편집팀의 디자이너도 누끼를 잘 땄지만 품질을 조금 더 높이려고 누끼마녀에게 외주를 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누끼만 따는 외주는 처음인지라 얼마를 줘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그 디자이너는 비싸지 않은 가격에 일을 했고, 품질도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누끼마녀는 아주 짧은 시간에 그 일을 해치웠죠. 그녀는 고수였기에 그 일이 우스웠을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당신한테 누워서 떡 먹기니 공짜로 해주시오’라고 말할 수 없겠죠.

디자인 7월호 컬럼 가운데 편집해서 실음

컬럼에서 제가 인용한 부분을 읽으시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컬럼에서는, 아웃소싱될 수 있고 돈도 제대로 못받는 실무를 하지 말고, 정치나 기획처럼 폼나고 아웃소싱될 수 없는 업무를 지향하는 게 디자인 분야에서 흔히들 하는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컬럼을 쓰신 분은 이게 맞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 문제는 너도 나도 그렇게 폼나고 상위의 일을 했을 때, 디테일이 살아있는 디자인이 나올 수 있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열정 바이러스라는 책에서, 봉준호 감독도 이 컬럼에서 언급한 것과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봉준호 감독 자신은 디테일에 치중하는 감독이라는 평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물론 자신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려고 노력하지만, 한국 영화 산업이 전반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면, 봉감독이 추구하는 디테일이 나타날 수 없었기 때문이랍니다. 즉 조명이든, 편집이든, 의상이든 실무를 담당하는 스패프들의 역량이 그만큼 높아졌기에, 봉디테일표 영화가 가능했다는 뜻이죠.

실무를 맡다가 비즈니스를 만드는 일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가끔 실무의 중요성을 망각하십니다. 물론 고객하고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하고, 사업을 확장해 나아가는 것이 조직에서 무척 중요하지만. 성장에만 치중하다 보면, 비즈니스를 지속하게 하는 아주 기본적인 것, 즉 품질을 망각해서 조직이 어려워지는 경우를 자주 목격했습니다.

저도 앞으로 조직에서 실무를 하기보다 일을 만들어가는 작업을 많이 할텐데, 지나치게 높게 올라가서 현실감각을 잃었을 때, 다시 중력을 느끼려고 산에서 내려오는 것도 필요한 듯합니다.

생활의 달인과 조직, 그리고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Wednesday, September 2nd, 2009

TV 프로그램인 생활의 달인을 보고 있으면, 참 세상은 넓고 神技를 부리시는 분들이 참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태산보다 높게 쌓인 양파들을 게눈 감추듯이 순식간에 다듬고, 전화번호부 책보다 두껍게 쌓인 점표를 단순한 계산기로 컴퓨터보다 더 빨리 계산하시는 분들이 내 주변에 사시는 것을 보면, 고수를 찾아서 강호에 나서는 일은 부질없는 짓인 듯합니다.

달인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일에 열정을 다해서 일하시는 모습에 고개가 한번 숙여지고, 신의 경지에 이른 기술의 수준에 인간의 한계란 어디까지일까라는 호기심이 생깁니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듭니다. “과연, 모든 사람들이 달인처럼 한 분야를 파고들 필요가 있을까?”하는 의문 말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조직이나 개인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얼마나 더 잘해야 할까?”하는 생각이죠.

이  질문에 답하려면, 효율성과 효과성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효율성은 어떤 일을 할 때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최대의 결과를 뽑아내는 것이죠. 바로 달인들이, 어떤 분야에서 최대의 효율을 내시는 분들입니다. 즉 달인의 효율성을 100으로 봤을 때, 평범한 사람들의 효율성은 100에 훨씬 미치지 못할 겁니다.

효과성은 목표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개념입니다. 어떤 달인이 연봉을 높이자는 목표를 세웠다고 가정하죠. 이런 경우에 달인의 기술이 신의 경지에 닿아서 엄청나게 효율적이더라도, 신의 기술을 사용해서 연봉을 높이자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달인의 기술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세상은 넓고 달인은 많고, 평범한 사람들은 더 많기 때문에. 세상을 꼭 효과성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목표가 분명한 개인이나 조직은 항상 효과성을 높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목표가 뚜렷하더라도, 효과성을 높이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블루오션이라고 부르는 분들도 있고, ‘High risk, High Return’이라고 인생 한방역전을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효과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 분들을 보면, 대개 다른 사람들이 시도하지 않은 것들을 하기 때문에, 그 방법이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오래 생각해 보지 않아도 당연한 것이, 새로운 것을 시도해서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이것 저것 찔러 봐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이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죠.

효율성과 효과성은 모두 중요한 개념입니다. 개인이나 기업 모두 (양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목표를 달성하고 성공하려면, 효율성과 효과성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효과성도 높이면서 효율성을 높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특히 6시그마,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CMMI 등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론이나 체계를 경험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6 시그마, BPR, CMMI는 모두 “지금 잘하는 것을 더 잘하자!”라는 개념에 기초한 것이죠. 즉 6 시그마는 흔히 말하는 제품이나 프로세스에 존재하는 편차를 줄이려는 것이고, BPR은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는 군더더기 활동을 제거하자는 것이며, CMMI는 제품을 개발하는 프로세스를 최적화해서 효율을 높이자는 데 있습니다. 이런 방법론이나 체계가 옳지 않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즉 효율성이 문제인 조직에서, 이런 것들을 적절히 적용할 수 있다면, 훌륭하죠.

다만,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론을 적용하다 보면, 달인의 딜레마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자출판이 도입되던 그 옛날, 변하는 세상에 담을 쌓은 채 더 빨리 조판하려던 식자공 달인들. 신기에 가까운 속도로 조판하던 그 식자공 달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개인이나 기업 모두 효율성을 높이려고 노력할 때, 주위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내가 지금 잘하는 것을 더 잘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효율성을 조금 떨어트려도 효과성을 높이는 일을 해야 하는지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