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November, 2009


핸드폰 사용성

Saturday, November 28th, 2009

전, 지금 HTC에서 나온 터치 다이아몬드 핸드폰을 쓰고 있습니다. 모바일 기기 관점에서 보자면, 참 괜찮은 핸드폰입니다. 하드웨어 스펙이 좋아서, SCUMM VM을 설치해서 어릴 적 즐겼던 원숭이 섬의 비밀과 같은 어드벤처 게임도 즐길 수 있고요, 번들로 제공되는 월드 카드는 명함 정리를 하던 수고를 한방에 날려버렸습니다.* 그리고 FM 라디오 음질도 괜찮고, 화면 해상도도 좋아서 오피스 모바일을 사용해 워드나 파워포인트를 읽으면서 음악을 듣기에도 괜찮습니다.

HTC의 터치 다이아몬드는 확실히 장점이 많은 핸드폰인데요, (제가 이 핸드폰을 사용하면서 경험한 UX 관점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완성도입니다. 물론 스마트폰이라는 사실을 100퍼센트 이해해도, 일반 핸드폰과 비교했을 때 음성이나 화상전화를 할 때 불편한 점이 무척 많습니다.

전화 기능을 사용하면서 조금 당황스러운 경험이 몇 번 있었는데요, 특히 전화 잠김 상태에서 화상 전화를 받았을 때 조금 황당했습니다. 잠김상태에서 화상 전화를 받으면, 키패드 화면이 보입니다. 잠김 상태이기 때문에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키패드 화면을 보여주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데요.

이 상태에서는 음성전화인지 화상전화인지 사용자가 인식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화상 전화를 받았는데도 음성 전화라고 오해해서 전화를 받으면, 상대방은 제 영상이 까맣게 보인다고 말합니다. 그제서야 화상 전화라는 것을 알고, 키패드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잠금 상태를 풀면, 제 얼굴이 보이기를 기다리는 상대방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개통되지 않은 전화라도 111, 112, 113, 119와 같은 긴급 전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전화기는 잠금 상태에서 비밀번호을 입력하는 키패드만 제공되기 때문에, 처음 이 전화를 사용할 때 긴급전화를 걸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나서, 긴급전화를 걸 수 있다고 생각했죠(사진1).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긴급 전화번호인 111, 112, 113, 119를 입력하면 비밀번호를 나타내는 별표(*)가 사라지고 숫자가 나옵니다(사진2). 즉, 잠김 상태에도 긴급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비밀번호로 앞자리로서 111, 112, 113, 119를 사용하면 비밀번호 노출의 위험이 있습니다.

HTC 터치 다이아몬드 키패드

사진1. 비밀번호 입력 화면

HTC 터치 다이아몬드 키패드

사진2. 비밀번호로서 긴급 전화번호와 일치하는 것을 입력할 때

기능적인 측면에서 HTC 다이아몬드 터치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완결성 측면에서 이 핸드폰의 UX를 바라 보자면, 점수가 매우 낮습니다. 전, 그 원인을 플랫폼과 OS에서 찾습니다.

아이폰의 경우 완성도 면에서 높은 평가를 봤는데, 애플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통제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모바일 윈도 기반의 스마트폰의 경우, 하드웨어 제조사가 윈도 기반에서 Application을 개발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완결성을 애플보다 상대적으로 추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일 듯합니다.

결국 이 포스트의 이렇게 요약될 듯합니다. 즉 스마트폰을 잘 쓰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별로 스마트하지 않은 핸드폰을 버리고, 스마트할 것이라고 믿는 아이폰으로 갈아탈 예정입니다. 과연 아이폰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스마트한지 냉철하게 사용하고 평가해 보겠습니다. :)

* 월드 카드의 명함 인식률은 정말로 대단합니다.

쓸데 없는 짓이란 없다, 똘레랑스

Saturday, November 28th, 2009

‘똘레랑스’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습니다. 홍세화씨가 쓴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에서 소개하면서 잘 알려진 개념이죠. 똘레랑스의 뜻은,  ‘자기와 다른 종교, 종파, 신앙을 가진 사람의 입장과 권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한국어로 옮긴다면 ‘관용’정도에 해당할텐데요, 전 똘레랑스를 ‘내가 대접받고 싶은 데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라.’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홍세화씨가 쓴 책에서는, 프랑스를 똘레랑스가 만연한 민주주의 꽃인 곳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비슷하죠. 이보경씨가 쓴 ‘파리는 사랑한다. 행복할 자유를!’이라는 책에서 프랑스도 사람 사는 곳이니 빈부 차이, 인종 문제가 도드라지지 않지만, 그래도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자본주의란 참으로 오묘한 것입니다. 돈이 핵심인 제도이기 때문에, 돈이 사람보다 우선시되는 꼬리가 개를 흔드는 상황이 매우 자주 연출되지만. 전 그래도 자본주의를 선호하는 게, 자본주의가 다른 경제제도보다 다양성을 제공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돈을 번다는 것은 타인의 필요를 어떻게든 만족시켜야 하고, 백인백색이라는 말처럼 사람들의 욕구나 필요는 다양합니다. 따라서 이런 다양한 욕구와 필요를 만족시키려고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수많은 직업이 흥망성쇠했죠. 이런 직업의 다양성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특권이 생깁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지만, 누구나 잘 아는 이야기를 잊는 분들이 간혹 계십니다. 아이들이나 보는 만화에서 ‘원소스 멀티 유즈’라는 다양한 비즈니스가 창출되고, 세상 일에 무심한 어른들이나 하는 유치한 게임 덕분에 여러 사람들이 먹고 살죠. 그렇게 본다면 코스 플레나 게임처럼 ‘누군가에게 쓸데 없는 짓’이 사실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엔진인 셈이죠.

전  이런 관점에서, 홍세화씨가 말하는 거시적인 똘레랑스보다, 남들이 하는 쓸데 없는 짓을 가치 있는 일로 생각해 주는 미시적인 똘레랑스가, 우리 사회를 더욱 살찌운다고 생각합니다.

배틀스타 갤럭티카

Sunday, November 22nd, 2009

제가 봤던 미드 가운데, 아직도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건 ‘트윈 픽스’입니다. 트윈픽스의 줄거리는 큰 틀에서 매우 간단합니다. 외딴 시골 마을에서 로라라는 여고생이 살행되면서 살인범을 수사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인데요, (제 생각엔) 요즘 유행하는 미드의 공식인 떡밥 신공이 이 드라마에서 처음 선보인 듯합니다.

트윈픽스

영화 트윈 픽스

이 드라마의 감독이자 컬트 영화의 거장인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드라마에서 널려 놓은 떡밥이 지나치게 많아서, 드라마에서 모두 풀어내지 못한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영화도 만들었습니다. 저도 드라마 열혈팬으로서 극장판 트윈픽스를 봤는데요, 문제는 영화에서 누가 로라를 죽였는지 알려 주면서 다시 수많은 떡밥을 양산했다는 데 있습니다. :) 완결성을 원하는 팬들이라면 그런 떡밥들이 짜증나지만, 열린구조를 좋아하는 저로서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가 있는 트윈 픽스는 뇌리에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트윈 픽스 이후로 X파일이나, 24, 닥터하우스 등. 재미있는 드라마를 여러 편 봤지만, 그래도 트윈 픽스만큼 강렬한 인상을 준 드라마는 아직 없었죠. 그런데 우연히 인터넷에서 우주전투를 담은 동영상을 봤는데, 기존 우주전쟁 장면과 달리 사실적인 느낌을 주는 게 매우 신선했습니다. 그 동영상의 출처를 알아보니 SF미드 ‘배틀스타’였습니다. 전투장면에 이끌려서 ‘배틀스타’를 보기 시작했는데요, 매회 “참 잘 만들었다!”하고 감탄하는 어느새, 마지막편까지 다 봤습니다.

배틀스타 갤럭티카

배틀스타 갤럭티카

SF장르가 아이들의 장난거리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 궁극의 SF는 현실을 반영하는 최고의 은유라는 이야기가 있죠.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눈요깃감을 뛰어넘어 현실의 문제점이나 이슈를 잘 담아낼 때, SF영화나 드라마는 “참 잘 만들었다!”하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배틀스타 갤럭티카는 웰메이드 미드입니다. ;)

스토리 자체의 완결성은 당연한 것이고, 이 드라마에서 유일신, 윤회사상, 민주주의, 테러, 인종문제, 인간과 기계 등 참 다양한 주제를 다뤘는데요, 그 주제가 얼마나 다양하고 깊었던지 배틀스타에 나온 출연진들이 UN토론회에 참석해서 연설까지 했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것입니다. (이후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인간의 방어 시스템을 무력하게 만들어서 기계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빌미를 제공한, 발터 박사가 시즌4, 9편에서 심한 부상을 입고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발터 박사 옆에는, 기계들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인류를 ‘지구라고 불리는 곳’으로 인도하는 로슬린 대통령이 있었죠.

말 많은 발터 박사는 자신이 죽을 것을 직감했는지 유언 비슷하게 ‘자기 때문에 인류가 멸명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대통령에게 말합니다. 대통령은 이 이야기를 듣고  흥분한 나머지, 발터 박사의 상처를 감쌌던 붕대를 풀어 버리죠. 그도 그럴 것이, 그 발터 박사 때문에 인류가 대부분 죽었고, 생존한 사람들도 말로 표현 못할 고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발터 박사가 피를 흘리면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사이 대통령의 자의식 속에서, 멘토가 대통령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발터가 좋은 일을 했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문제는 다른 사람의 생존권을 인정하는 게 어려워질수록 생존권을 인정하는 게 중요해진다는 점이에요. 인류가 스스로 생존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한다면, 한사람 한사람마다 할 수 없죠. 나쁜 사람에게도 착한 사람처럼 죽음은 엄청난 것이죠.

이 드라마에서 이야기하는 논지는, 영화 ‘데드맨 워킹’이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말하는 주제와 비슷합니다. 즉 죽일 짓을 한 범죄자들이라도 그 죄를 ‘사형’이라는 방법으로서 인간이 심판하는 게 온당하느냐는 것이죠. 물론 이런 주장이 이성적으로 받아들여도, 범죄자들이 저지른 죄만 놓고 보면 “사형만은 거두자!”하는 의견을 개진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쨌든 SF드라마에서 건들기 어려운 주제를 시나리오에 풀어내는 제작진의 능력은 대단했습니다.

블로그 4주년

Saturday, November 14th, 2009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서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는 30대 초반이었는데, 블로그 생활과 더불어서 벌써 30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중학교 때 준비도 하지 않았던 시험에서 성적이 상당히 좋게 나와서, ‘난 세상이 선택한 천재야!’라는 중이병에 걸린 적도 있지만. 이른 시절에 받은 아이큐 테스트에서, 제 지적 재능 수준은 정규분포 가운데 있다는 사실 덕분에, 감사하게도(?) 제게 하늘이 허락한 천재성이 없음으로 노력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일찍 깨달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제 인생의 모토로 삼는 사자성어는 ‘대기만성’입니다. ‘대기만성’을 나쁘게 표현하자면, 가늘고 길게 살자로 보일 수 있지만. 영원히 현역에 남아서 일하고 싶은 게 꿈이기에, 한시절 주목받는 홈런타자보다 꾸준히 2루타를 쳐내는 성실한 타자이고 싶습니다. 그런데 2루타를 꾸준하게 쳐낸다는 게, 철저한 자기관리 없이 힘들죠. 따라서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꾸준히 하려는 게 생활 습관처럼 굳어졌습니다.

생각해보면, 블로그도 이런 습관 때문에 4년을 유지한 듯합니다. 그렇지만 ’대기만성’이 삶의 모토여도, 블로그를 4년 동안 이어오는 것은, 노력만이 ‘생존전략’인 엔지니어에게도 쉽지 않은 일인 듯한데요. 그럼 꾸준함 말고 무엇 때문에, 저는 글을 계속 쓰는 걸까요?

회사생활에 쫓기고 가정에도 충실하고 싶은 상황에서, 꾸준히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척박한 엔지니어링 문화를, 한 단계 도약시키려는 역사적 사명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는데요. 솔직하게 말해서, 그런 대의명분은 제게 없는 듯합니다. :)

한동안 멋진 이유를 생각했지만, 마음이 끌리는 대답은 글쓰기가 ‘그냥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글쓰기가 재미있다고 해도, 과자봉지를 가슴에 품고 쇼파에 몸을 맞긴 채 미드를 보듯이, 그런 편한 재미만 있지는 않습니다. 가끔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과 키보드에서 튀어나는 글자가 싱크되지 않아서, 글을 쓴다는 게 정말로 짜증나는 일일 때도 있지만요. 그런 지겨움과 지난함 속에서 글을 쓰는 건, 쓰고 나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유치한 글이지만 예전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세상을 바라 봅니다. 푸른 초원을 바람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유목민은 안장 위에서 초지를 응시하고, 자연의 보답에 기뻐하는 농부는 비단보다 부드러운 황토 위에서 대지를 관조하며, 덤프 트럭 기사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삶의 고단함이 깔려 있는 도로를 쳐다 봅니다. 그리고 개발자는 17인치 모니터를 통해서 세상을 프로그램합니다.

8비트 MSX 컴퓨터의 마력에 빠졌던 컴키드는 어느새 컴퓨터로 일용할 양식을 얻는 샐러리맨이 되었습니다. 직업이 그 사람의 세계관을 지배하듯이, 30년 이상을 취미와 직업으로 접했던 컴퓨터는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만들었습니다. 사람 사이의 역학 관계는 프로젝트 팀원 사이의 정치로 파악하고, 삶의 주기는 프로젝트 주기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프로그래밍 언어로 컴퓨터와 나누는 대화는 외국인과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편합니다.

이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글 쓰기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글을 써서 물질적으로 얻는 것은 없지만, 내가 쓴 짧은 글이 누군가의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글쓰기의 고단함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글쓰기의 매력에 대해서 생각하다, 글쓰기는 바이러스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불특정 다수의 컴퓨터를 감염시켜서,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해당 컴퓨터에 악의적인 영향을 주는게 목적입니다. 물론 글쓰기의 목적이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해악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컴퓨터 바이러스가 전염되는 메카니즘과 글이 다른 사람의 생각에 전파되는 메카니즘이 동일하다는 생각입니다.

많은 책을 읽었지만, 어떤 책은 사고 체계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고 읽자마자 금방 잊혀집니다. 그러나 가끔씩 우연이 접한 글이나, 마음 먹고 읽은 대사상가의 생각에 빠져서 사고 체계가 온통 저자의 생각으로 점령 당한 경우가 있습니다. 마치 강력한 바이러스가 운영 시스템 전체를 지배하는 것처럼요. 이런 글을 만나면, 저자의 생각에 압도 당해서 어느 순간에는 내 자신만의 독자적인 사고 체계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따라서 몇 년에 한번 씩 출몰하는 강력한 바이러스가 백신으로도 쉽게 치료되지 않는 것처럼, 사고 체계를 점령한 글은 쉽게 지워 버릴 수도 무시해 버릴 수도 없게 됩니다.

강력한 바이러스가 시스템을 마비시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스템을 조금 더 완성에 가깝도록 만듭니다. 즉, 바이러스가 파고 들었던 시스템 취약점은 분석되고, 이를 막을 수 있는 기술과 패치가 적용됩니다. 이와 비슷하게, 한동안 사고를 점령했던 글은 어느새 사고 체계로 흡수됩니다. 물론 저자의 생각이 완전해 보여서 내가 가졌던 논리와 세계관을 대체하기도 하지만, 기억이라는 특수한 경험과 결합함으로써 더욱 견고하고 튼튼한 나만의 사고 체계를 만들어 줍니다.

조금은 늦게(?)… 글쓰기의 매력에 빠진 이유는 강력한 바이러스를 만드는 것을 꿈꾸는 치기 어린 해커(혹은 크래커)의 본능이 아직도 제 가슴 속 어딘가에 살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욱 강력한 바이러스를 꿈꾸며,

그렇습니다. 내일도 그리고 아마 먼훗날에도, 불꺼진 통근버스 안에서 멋진 아이디어가 생각나 충혈된 눈으로 핸드폰에 메모를 남기거나, 가족들이 잠든 새벽에 피곤한 몸이지만 컴퓨터를 켜고 글을 남길 것은, 강력한 바이러스를 만들면 좋지만, 그런 목표 의식이 없더라도 글쓰기가 그냥 재미있기 때문일 겁니다.

# 덧: 사실 제 블로그는 읽기전용 블로그에 가깝죠. 그런데도 가끔 댓글로써 제 가슴에 파문을 크게 남겨주시는 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물론 댓글을 남겨주시지 않더라도, 꾸준히 방문해서 읽어 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birthday cake with candles

image from http://www.flickr.com/

* 물론 EQ, SQ, 다중지능도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잘 하는 게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