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with Hani

로망은, 실현되리라!

Archive for November, 2009


조직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Monday, November 9th, 2009

파워포인트 블루스를 읽었습니다. 편집자나 저자나 공을 많이 들인 흔적이 보여 참 좋았습니다. 프리젠테이션 젠이 잡스처럼 PT하는 방법을 설명한 책이라 한다면, 이 책은 한국형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잘 만드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직장생활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잡스처럼 PT자료를 만들었다가, “여기가 미국인 줄 아냐?”하는 핀잔을 받을 수 있습니다.

파워포인트의 태생은 PT용 자료를 만드는 데 있지만, 한국에 토착하면서 보고서 만드는 대표적인 도구로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간혹 보고서의 목적에 맞게 내용을 충실하게 담아서만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보고서를 깨알같이 작은 글자로 채웠다가는 “당신이 만든 보고서는 왜 그렇게 말이 많아!”하는 핀잔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이브리드가 요즘 대세이듯, 대한민국 파워포인트는 보고서와 PT, 두 가지 목적을 충실히 달성해야 하는 게 현실이죠. 이런 현실을 잘 반영한 탓에, 이 책은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듯합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한 파워포인트는 보고서와 PT 모두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문장으로 표현하지 않고 말로써 설명하거나 그림으로 대체한 내용을 파워포인트만을 읽고 파악하기란 힘들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제 직장경험이 독특할 수 있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접한 대부분의 문서는 파워포인트였고, 정형화된 자료는 엑셀일 때가 흔했습니다. 가끔 워드 형식의 자료를 본 적도 있지만, 그 내용이 제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지식이라고 말할 게, 즉 문서형식으로 된 지식이 매우 적은데도, (제가 경험한) 조직은 대부분 잘 굴러가죠. 참 신기한 일인데요.

아마도 우리나라 회사는 매뉴얼로 대표되는 형식지보다 구성원 뇌리에 있는 암묵지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일 듯합니다.* 그래서 간혹 조직에 여러가지 이유로 문제가 생겨서 암묵지를 소유한 경력사원이 대거 퇴사하고 대부분이 신입사원이나 회사물정 잘 모르는 경력직으로 채워져도, 조직이 굴러갈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도 잘 살펴보면,  그나마 체계적으로 정리된 암묵지를 보유한 경력사원이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암묵지를 신규 입사자에게 Copy&Paste할 때가 잦습니다.

“개떡같이 그려도 찰떡같이 만들어 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원이동이 잦은 설계부서에서 그리는 도면 품질은 대개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신기하게도, 이런 ‘개떡같은 도면’으로도 ‘찰떡같은 제품’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는데요. 설계부서에서 도면을 개떡같이 그려와도, 생산부서에 계신 분들이 방대한 암묵지가 있기 때문에, 도면의 문제를 바로잡거나 어느 경우엔 도면을 재해석해서 훨씬 좋은 제품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세가 기울어 가는 조직에 남은, 굽은 나무 같은 경력사원들 그늘 아래에서 그나마 희망의 싹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력직마저 나가 버렸을 때, 참 암담한 상황이 되는데요. 그래도 제 경험상 조직이 굴러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회사에 돈이 도는 경우가 그런데요. :) 결국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자본주의이기 때문이죠.

*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다분한 문장입니다. ^^

대기만성

Thursday, November 5th, 2009

소년출세, 청년정치, 중년상처, 노년무전, 세대별 고달픈 인생의 4가지 유형이다.

소년출세, 젊은 나이에 출세하면 대단해 보이지만 이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을 듯하다. 개인의 성공을 가로막은 요인 중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젊어서 거둔 성공이다.

청년정치, 젊은 시절에 정치를 시작하면 재충전할 시간 없어 세월을 소진하기 십상이다. 이러한 경우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도 풍파해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중년상처, 아이가 사춘기에 이른 중년에 배우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것처럼 끔찍한 일도 없다. 재혼을 해도 조강지처만 하겠냐.

노년무전, 노년기에 돈은 신분과 같다. 젊어서 실패하면 재기할 기회라도 있지만, 늙어서 돈이 없으면 초라하다.

30대가 아버지에게 길을 묻다.

젊지만 가진 것 없고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 때,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이 있죠. 바로 대기만성입니다. 그리고 항상 현역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대기만성은 최고의 금언이 아닐까 합니다.

매뉴얼의 한계

Tuesday, November 3rd, 2009

얼마전에 지인과 함께 자주 가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습니다. 평소처럼 값을 치루고 3가지 맛을 선택한 다음, 맛있는 아이스크림이 통에 담기는 것을 봤습니다. 아이스크림을 통에 다 담은 아르바이트생이, 아이스크림을 저울에 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ooo 그램이 정량인데 4그램 더 드렸습니다.

지인과 저는 아르바이트생이 건넨 아이스크림을 받아들고 가게를 나왔습니다. 가게를 나와서 조금 걸어가다가 지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4그램 더 줬다고 말하는 건, 너무 형식적인 것 같아.

몇 달 전에 용량이 줄었는데 그때부터 무게를 재고 나서 몇 그램 더 줬다고 말하더라고. 이 가게만 그런 건 아니고 다른 가게도 그런 거 보면, 매뉴얼에 그렇게 적혀 있는 게 아닐까?

그럴듯한데.

***

규모를 늘리는데 품질이 일정하려면, 프로세스를 표준화하고 문서, 도구를 정량화해야죠. 그렇다 보니까, 정규분포 끝자락에 있는 지인이나 저같은 사람들에게, 다소 방어적인 프로세스는 지나치게 형식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죠. 뭐, 그런 게 매뉴얼의 한계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