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December, 2009


경쟁, 성장이라는 또 다른 이름

Thursday, December 31st, 2009

작년 가을 쯤에 수영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 1년이 조금 넘었네요. 아쉽지만 몇 달전부터 시간이 맞지 않아서 강습을 접었습니다. 강습을 받아야 수영 실력이 붙는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지만, 사정상 강습을 가지 못하고 간간히 자유수영을 하면서 연습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자유수영을 가면 여러 영법을 두루두루 연습했지만, 요즘엔 자유형만 오로지 파고 있습니다. 몸치인 탓도 있지만, 시간상 여러 영법을 연습한다고 실력이 늘지 않을 듯하여, 선택한 전략이죠. 유투브 동영상이나 인터넷에 있는 수영지식들을 섭렵하면서 연습을 하니 실력이 조금 늘었는데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학습 곡선의 미분값이 0인채 변하지 않더군요. 한마디로 배움의 정체기를 맞은 셈이었습니다.

물 잡는 것도 잘 되지 않고, 글라이딩도 조금 가다가 마는 것 같고. 아무튼 열심히 연습할수록 더 잘 안되는 총체적인 난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수영도 일종의 학습이기에, 제가 어떤 것을 배우다가 실력이 늘지 않을 때 사용하는 방법 몇 가지를 적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 가지는 이미지 트레이닝입니다. 며칠 동안 수영을 가지 않고 동영상만을 반복해서 본 후, 머릿속에서 영상을 복기하면서 수영하는 상상을 합니다. 단번에 효과를 거두지 않지만,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나서 수영을 하면 오로지 몸으로만 수영 연습한 것보다, 한 걸음 떨어져서 제 자신을 관조했기 때문에, 문제점을 쉽게 발견하고 고칠 수 있습니다.

수영 실력을 쌓는 다른 방법으로는, 제가 가는 수영장에서 저보다 수영실력이 조금 더 나은 사람을 경쟁상대로 삼는 겁니다. 물론 박태환 선수나 펠프스 선수를 경쟁상대로 삼을 수도 있지만, 실력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에 경쟁하고 싶은 의지가 꺾이죠. 하지만 수영실력이 조금 나은 분을 타깃을 삼으면, 경쟁할 열정이 생깁니다.

즉 경쟁상대가 팔젓기 한 세트에 50센티미터를 나아간다면, 저는 그분보다 조금 더 나아가려고 노력합니다. 목표가 구체적이기 때문에, 경쟁상대를 분석하고 이미지 트레이닝 때 봐 둔 동영상과 비교해 가면서 연습을 하면 상당히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경쟁상대로 삼은 분보다 글라이딩을 더 잘하거나 조금 더 빨리 수영하게 됩니다. 즉 경쟁 덕분에 실력이 자연스럽게 좋아지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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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프로젝트에 적용하고 있는 도구(tool) 세미나에 들어갔습니다. 이 도구는 해당 분야에서 거의 독점적인 지위에 있는데요. 하지만 몇 가지 기능에서, 서드 파티에서 만드는 플러그인보다 사용성이나 품질이 떨어졌습니다.

이  도구를 사용하는 분들이 궁금해 하는 건, 서드 파티를 만드는 업체를 인수하거나, 인수할 수 없다면 치사한 방법이지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라이선스를 그 업체에 제공해 주지 않으면 될 텐데, 왜 그런 방법을 쓰지 않느냐는 것이죠. 마침 참석자 한 분이 이 질문을 했습니다. 진행하시는 분의 대답이 참 신선했습니다.

질문해 주신 것처럼, 저희가 라이선스를 발급하지 않아서 개발을 못하게 하거나, 돈으로 그 업체를 인수할 수 있지만요. 그렇게 하면 저희 회사 입장에서 좋은 경쟁 상대가 사라지는 셈입니다. 사실 그 업체 덕분에 고객 분들이 만족하지 않았던 기능들이 상당히 많이 개선됐습니다. 앞으로도 그 업체와 경쟁하면서 기능을 업그레이드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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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가장 큰 목표는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답변은 아마도 이윤추구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본다면, 회사가 돈을 버는 이유는 바로 회사의 생존입니다. 사람이 생존을 위해 밥을 먹듯이, 회사는 생존을 위해 이윤을 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가 이윤을 추구하려면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는 건 당연한 듯합니다. 그리고 고객을 기쁘게 하려면, 당연히 다른 회사와 경쟁에서 이겨야 하겠죠.

그런 경쟁을 통해서, 회사가 성장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더 이상 경쟁상대가 없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상태가 됩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가상의 적을 만들지 않는 이상, 경쟁상대는 자신 뿐인 상태가 되죠. 물론 DNA가 뛰어난 회사는 자신과 경쟁을 통해서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지만. 제가 아는 대개의 회사는, 경쟁상대를 찾을 수 없기에 고객 만족의 모토는 뒷뜰에 둔 채, 내부경쟁에 휘말리거나 ‘고객 만족논리’가 아닌 ‘조직구성원 만족논리’로 비즈니스를 풀어 가더군요.

이런 상황이 조그만 계속되면, 황금시대를 누리게 해준 캐쉬카우는 굶어 죽고, 논밭을 팔고 심지어 대들보마저 팔아버린 채, 기업 최대의 목표인 생존이라는 화두는 안드로메다로 사라져 버리죠. 물론 경쟁이라는 단어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생각하게 하는 무서운 것이기도 하지만. 선의의 경쟁은 우리가 장기적으로 생존하고, 더 중요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덧: 올해, 오늘이 마지막이네요. 열심히 달려 오신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야망과 그늘

Tuesday, December 15th, 2009

RPG나 판타지 소설에서 자신보다 엄청나게 큰 검(?)을 휘두르거나, 등에 매고 폼을 잡는 캐릭터들이 있습니다.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그런 폼생폼사 형의 캐릭터는 미우라 켄타로 씨의 만화 베르세르크에서 나오는 주인공 가츠에서 시작됐습니다.

상당히 남성의 시각에 치우친 만화이지만, 가츠가 휘두르는 거대 검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쓰러진다는 것은, 참 황당하지만 새로운 설정이었습니다. 만화가 본격 판타지물로 바뀐 뒤로 현재 몇 권까지 출판되었는가 하는 작은 관심조차 사라졌지만. 그래도 이 만화가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박력 넘치는 가츠의 검 휘두르기가 아닌… 이 이야기의 핵심 줄거리를 만드는 그리피스라는 캐릭터 때문입니다.

그리피스는 용병단인 ‘매의 단’ 단장이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가츠는 ‘매의 단’에 합류하게 되고, 그리피스의 비전에 동화되서 수많은 전과를 이루죠. 그리고 용변단의 위상이 높아지자, 그리피스는 왕과 권력을 논하는 자리까지 오릅니다. 그리피스에게 세상을 지배하는 꿈을 이루는 게 머지 않아 보였죠. 하지만 권련이라는 게 모래성처럼 무상하듯, 그리피스는 죄인의 신분으로 바뀌어서 지옥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고통을 겪죠.

가츠와 그리피스

가츠(왼쪽)와 그리피스(오른쪽)

이때, 그리피스는 고통을 차치하고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을 놓치는 허무함을 주체할 수 없어, 자신과 함께 목숨을 걸고 수많은 전투를 함께한 매의 단원들을 제물로 바치고 고드핸드(일종의 신)가 되어 버립니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주인공 가츠는 고드핸드가 되어 버린 그리피스를 쫓아서 끝이 없는 복수의 길을 떠납니다.

무척 오래 전에 읽어서 만화의 내용은 가물가물해도. 그리피스가 부드러우면서 강력한 리더십으로 매의 단을 이끌던 모습, 그런 모습에 서서히 동화되어 가는 가츠의 심리 묘사, 권력을 손에 쥘 수 있는 상황에서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진 그리피스의 절규, 주체할 수 없는 야망 때문에 자신들의 동료를 제물로 신이 되어버리는 그리피스의 상황, 동료의 배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고통으로 울부짓던 가츠의 모습 등은 지금도 상당히 신선하게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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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직장 동료와 자주 쓰던 표현이 있는데, 바로 ‘엄지가 굵은 사람’입니다. 엄지가 굵은 사람은, 주로 사업하시는 분들을 지칭한 말인데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비즈니스를 만들어 가기 때문에 ‘배짱이 크다’하는 식상한 표현을 삼가고 ‘엄지가 굵다’하는 재밌는 말을 자주 썼습니다.

비즈니스를 해 본 경험이 없기에, 제가 사업이란 무엇이다 하고 논할 입장은 아닙니다. 샐러리맨으로도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건, 저처럼 ‘엄지가 얇은 사람’에게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데요. 가끔 ‘엄지가 중간 정도’되시는 분들은, 비즈니스를 하기에 엄두가 나지 않고, 샐러리맨으로 남기에 야망이 넘친다고 생각하십니다.

‘엄지가 굵은 사람’들에 대해서, 저와 자주 이야기는 나누던 동료도 ‘엄지가 중간 정도’되는 분이셨는데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 동료는 능력이 충분하나 이래 저래해서 ‘엄지를 굵게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은, 전문 경영인과 비전을 공유하기보다 정말로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사업을 일군 CEO를 찾아서 이직하셨습니다.

현재 이 동료의 상황은 어떨까요? 물고기가 물을 만난듯이, 비전을 공유하는 CEO와 함께 신명나게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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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그리피스와 가츠가 생각납니다. 즉 자신의 모든 것뿐만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빌려서라도 꿈을 이루는 그리피스와, 그런 그리피스의 비전에 동화되어 혹은  자신의 야망을 권력자를 통해서 실현하려는 가츠를 만나기 때문입니다. 그리피스가 옳은지, 가츠가 옳은지, 혹은 만화 속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이 옳은지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데요.* 예전보다 조금은 커진 듯한 엄지 손가락을 쳐다보면서, :) 오래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베르세르크가 생각나서 적어봅니다.

* 그래도 이 만화에서 강조하는 것은, 가츠가 보이는 휴머니즘에 있죠. ^^ 홍상수 감독 표현을 빌리자면, “그래도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 이겠죠.

아이폰 4일 쓰고 난 단평

Saturday, December 5th, 2009

예전에 제가 사용한 스마트폰은, 오래 전에 TV에서 본 아마추어 야구대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프로경기에서 보기 드물게 일어나는 보크가 경기에서 몇 번씩 나오거나, 2~3회마다 수비진들이 알까기를 하거나, 투수가 힘이 빠져서 더 이상 투구를 할 수 상황이 벌어지는 것처럼, 늘상 TV에서 보던 프로야구와 달리 어설픈 그런 느낌 말이죠. 아마추어 선수들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느껴지지만, 경기 내용은 열정에 미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그런 느낌이 스마트폰을 쓰면서 들었습니다.

아이폰을 4일 정도 쓰고 난 느낌은 뭐라고 할까요… 팽팽함과 긴장감이 넘치는 한국시리즈 7차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실수 하나 없이, 잘 치고, 잘 잡고, 잘 달리고, 선수들의 열정과 그런 열정에 부합하는 실력 있고 흥미 넘치는 경기를 본 그런 느낌이 아이폰을 쓰면서 들더군요.

“인간은 백인이거나 백인이 아니다”처럼 배중률 때문에 항상 참이 되는 문장을 항진 명제라고 부르죠. 항진 명제는 수학을 떠나서,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입니다. 즉 인간을 백인이 아닌 사람이나 백인으로 구분 짓는 것은, 여러 인종 가운데 백인을 강조하는 글쓴이의 관점이 녹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항진 명제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이폰과 그냥 스마트 폰을 써본 저로서는, “핸드폰은 아이폰과 아이폰이 아니다.” 식으로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책쓰기란

Wednesday, December 2nd, 2009

책을 쓰는 것은 조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만, 일반적인 조각과 달리 글쓰기 조각은 재료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다르죠. 한겨울 소복히 쌓인 눈밭에서 작은 눈덩어리를 굴려서 눈덩어리를 만듭니다. 눈덩어리가 내가 만들고 싶은 조각을 깎아 낼 수 있을 정도로 커졌을 때 눈굴리기를 멈추고, 조각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죠.

재료를 만들 때는 최대한 눈을 많이 뭉치는 게 중요했다면, 조각할 때는 내 머릿속에 있는 조각을 끄집어 내기 위해 필요 없는 눈덩어리를 과감하게 제거하는 게 핵심이죠.

제가 쓴 두번째 책은, “겸손한 개발자들이 만드는 소프트웨어가 거만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하는 작은글덩어리에서 시작했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제 경험과 지식 위에 작은 글덩어리를 굴려서 조금씩 덩치를 키우고, 글덩어리가 잘 뭉쳐지지 않을 때 책을 읽으면서 글덩어리를 키울 재료를 구했습니다.

글 덩어리가 책 한권을 조각해 낼 정도로 커지자, 한권의 책으로 만들기 위해서 필요없는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했죠. 글덩어리를 모으는 데 들인 시간을 생각하면 살덩어리 같은 글조각을 떼어내기 힘들었지만. 이때 과감하게 군살을 없애지 않는다면 개성이 없거나 지루한 책이 됩니다.

책쓰기를 고민하시는 분들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한권의 책으로 만들 수 있는 글덩어리를 뭉치는 작업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렇게 글덩어리를 뭉치시다 보면, 어린 시절 반나절 눈밭에서 굴르면서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뭉쳐 놓은, 집채만한 눈덩어리를 보면서 느끼는 그런 뿌듯함이 드실 겁니다. 그러다 보면, 멋진 책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으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