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anuary, 2010


비전

Saturday, January 30th, 2010

힘들고 즐거웠던 직장생활을 함께 한 동료가 어느날 회사를 관두다는 이야기를 할 때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힘이 빠지는 순간 중 하나입니다. 물론 다양한 이유 때문에, 직장을 관두는 동료가 나오는데요. 직장을 옮기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그 이유로서 흔히들 말씀하시는 건

비전이 맞지 않아서…

입니다. 물론 직장생활이라는 게 베타 테스트나, 체험기간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꿈에 그리던 직장도 실제 생활이 되고 보면, 꿈속의 이상과 현실에서 오는 괴리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하죠. 그렇기 때문에, “내 비전과 회사 비전이 맞지 않아서…”라는 짧은 말 한마디로 직장을 떠나는 동료들을 이해합니다. 사랑도 변하는 마당에, 한때 찰떡 궁합처럼 맞았던 회사비전과 나의 비전 사이에서 싱크률이 떨어질 수 있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관리자들이나 경영층에서 직원들과 조직의 비전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거대 조직의 한 부서에서 비전을 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물론 회사 차원이나 개인 차원에서 비전을 정하는 것도 머리가 아프기도 하지만, 거대 조직의 한 부서에서 비전을 정할 때 더 힘든 것은 제한 조건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죠. 즉 이미 구조화된 회사 안에서 어떤 부서에는 정해진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유지보수 조직을 운영하는 어떤 부서에서, 조직원들이 유지보수 업무가 자기 비전과 맞지 않는다고 회사를 떠날 때, 떠나는 부하직원을 잡아두려고, “새로운 캐시카우를 만드는 제품을 만들자!”하는 원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을 만드는 부서가 있기 때문에, 유지보수 업무를 하는 조직에서는 자신들의 제한조건과 회사내 입지라는 이유로 말만 바꾼 비전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부서를 관리하는 부서장들은 고민이 깊어지죠. 한편으로 조직의 비전과 관련 없이 조직 구성원도 대체로 만족하고 조직도 양적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 없지만. 대개 부서장에게 강력한 비전이 있는 경우에 그렇더군요. 이런 경우  부서장의 비전이 꼭 부서 비전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CEO를 꿈꾸는 부서장이라면 자신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조직적인 뒷받침이 필요하고, 이런 조직적인 뒷받침은 자신의 세력으로 부서원들을 끌어 들일만큼 강력한 비전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조직원들이 정들었던 회사를 떠날 때, 부서장님들은 자신의 비전을 그동안 떠나는 사람과 얼마나 잘 동기화했는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물론 그런 고민 과정에서 “내 비전은 강력했다.”하는 결론을 얻는다면 다행이지만, 부실했던 자신의 비전 탓있었다는 걸 깨닫는다면 부서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정도로 자신의 비전을 강력한 자석처럼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물론 조직 비전을 구성원들이 단합하게 하도록 멋지게 세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비전이 알맹이는 그대로인 채 껍데기만 바꾼 이월상품이 되지 않으려면, 조직내 역학도 흔들어 놓을 정도의 원대함과 실행계획이 필요하겠죠.

* 질적인 것은 의문일 때가 있지만요.

스피치, 그리고 만남

Monday, January 18th, 2010

카네기가 말했었나요? 누가 말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연설에는 4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1. 연설자가 발표하려고 준비한 것
  2. 연설자가 실제로 발표한 것
  3. 청중들이 듣고 집에 간 것
  4. 연설자가 집에 가면서 말했어야 한다고 후회(혹은 생각)한 것

지난 주말에, ‘프로젝트에 대한 세가지 이야기’라는  주제로 사이냅소프트에서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사외 세미나였는데요. 세미나를 들으신 분들도 재미있으셨을 거라 추측하고요 :) 저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것을 정리할 기회여서 보람도 있었습니다. 물론 집에 오면서 4번과 관련한 몇 가지가 떠올랐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겠죠.

그리고  Java 세상을 덮친 Eclipse 3/e을 쓰시고, 생각하는 프로그래밍, 소프트웨어 누가 이렇게 개떡같이 만든거야 등을 번역하신 윤성준님도 뵙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어서 즐거웠습니다.

새로운 시작의 두려움, 그리고 얻는 것

Sunday, January 10th, 2010

처음 번역 작업을 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우연히 들린 루비 포럼에서 Agile Web Development with Rails 번역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Rails에 관심이 많았던 시기라서, 이 소식은 반짝 반짝 빛나는 제 눈에 쏙 들어오더군요. :)

웹상에서 번역 프로젝트 멤버를 모으고, 이야기가 오고 간 뒤에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향후 일정을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출장 때문에 월요일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부산에 간 뒤 금요일 저녁에 다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멤버들의 일정을 조정하다 보니까, Rails 번역 첫 오프라인 모임이 결국 금요일 저녁 강남 토즈에 잡혔습니다.

출장지에서 일을 마치고 부산 김해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을 탔습니다. 리무진을 타고 보니까, 일주일 동안 프로젝트 때문에 여기저기 다니면서 힘들었던지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 오더군요. 박카스로도 쫓아내지 못하는 강력한 피로와 싸우면서, 김포공항에 내려서 강남 토즈를 갈 생각을 하니 막막했습니다. 리무진을 타고 가면 몸은 편한데, 금요일 퇴근 시간에 길이 막혀서 제시간에 가지 못할 건 뻔했습니다.

천상 제시간에 도착할려면 지하철을 타고 가야 했죠. 김포공항에서 강남까지, 장시간?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도 슬슬 귀찮아지더군요. 마음 속으로 그냥 가지 말까 하는 귀찮니즘이 고개를 들었지만. 약속을 깬다는 게, 제 성격상 맞지 않아서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르던 귀찮니즘을 이겨내고, 첫 번째 번역 작업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확실히 처음 해보는 번역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번역 일도 쉽지 않고, 번역 중간에 멤버가 연락이 안 되는 경우도 생겼고, 번역 기간이 길어지면서 2판이 나오는 불상사가 생겼죠. 그 덕분에 제가 맡은 부분은 거의 처음부터 다시 번역하는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 어쨌든 번역 멤버도 고생했고, 인사이트에서도 애를 많이 쓰셨기에, Rails 번역서는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어떤 생각이 들어서, Rails 번역 작업에 참여하겠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순간의 결정 덕분에, 번역이라는 힘들지만 보람있는 작업을 해보게 되었고, 그 덕분에 책도 두 권정도 쓸 수 있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부산 김해공항에서 서울 강남까지 가기 싫다는 귀찮니즘이 생긴 건, 사실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던 듯합니다. 즉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는 현실에서 생기는 두려움 말이죠. 제 경험상, 마음 속에서 만나는 두려움은 진실된 얼굴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두려움은 제가 경험했던 귀찮니즘이나,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라는 자기합리화로 나타나죠.

사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은 당연할 일인 듯합니다. 우리는 어른이 되고 나서, 다른 사람 앞에서 실수 하는 것이 멍청하게 보이거나 미숙하게 보일까봐, 실수를 되도록이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잘하는 일이나, 어떤 일을 하더라도 완벽하게 해내려고 노력하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완벽함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배움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배움이란 내가 어제 몰랐던 것, 그리고 내가 오늘 실수한 것에서 생기기 때문이죠. 물론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은, 미숙한 인간으로서 멋진 일이지만. 단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에,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거나 주저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배울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기회를 날려 버리는 것입니다.

파이트 클럽

완벽해지려고 하지만, 그럴 수록 넌 더 성장할 수 없어(from 파이트 클럽)

물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걸, 배움의 기회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마음 속에서 피어 오르는 두려움을 없앨 수 없습니다. 두려움은 당연한 거죠, 다른 사람 앞에서 실수할 것을 생각하면, 괴롭기 때문이죠. 물론 마음 속에서 피어나는 두려움이 나를 삼키도록 둔다면, 두려움이란 내게 가장 큰 적이 되겠지만.

그런 두려움을 실패를 하지 말라는 신호로 생각하고, 두려움을 긍정의 에너지로 바꾼다면. 즉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실패하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거나 끊임없이 연습하는 긍정의 힘으로 바꾼다면, 우리가 무서워서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두려움의 얼굴은, 우리가 생각했던 만큼 끔찍하지도 않을 겁니다.

* 사실, 이 포스트는 조금 늦었지만 새해 다짐으로 제 자신에게 말하는 성격의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