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3주년

November 12th, 2008

블로그를 만들고 나서,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블로그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시간과 소재가 되는 한, 앞으로도 쭉 글을 올리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블로그 3주년을 자축합니다.

제 글을 읽어 주시는 여러분과, 작지만 힘이 되는 댓글을 남겨주신 여러분 덕분에 블로그를 3년 동안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복 받으실 겁니다. :)

축하 촛불

image from infuture.kr

감기약 포장과 디자인…

November 12th, 2008

최근 들어 몸관리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몸관리를 과신한 나머지 얇은 자켓 하나만 걸치고 돌아다녔더니, 환절기 손님인 감기께서 친히 왕림하셨습니다. 감기약을 먹으면 7일만에 낫고, 감기약을 안 먹으면 1주일만에 낫는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침 넘길 때, 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종합 감기약을 샀습니다.

감기약의 포장을 뜯고, 목의 통증을 1초라도 빨리 완화시키려는 마음으로, 감기약 포장을 허겁지겁 뜯었더니, 안 뜯겨지더군요. 종합 감기약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쉽게 찢어지는 금속재질이 아니라, 날카로온 손톱으로 벗겨지지 않는 복합 재질(?)로 되어 있습니다. 1원이라도 원재료를 아껴야 하는 시국에, 이게 무슨 만행인가 봤더니. 종합 감기약 포장에 KEEP-KIDS-SAFE-PACKAGED라고 써있더군요.

이 문구를 보고서야, 포장이 왜 그렇게 벗기기 어려운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즉, 아가들이 장난으로 감기약을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긴, 감기 걸려 정신이 몽롱한 성인도 포장지를 벗기기 어려우니까, 일단 감기약 포장은 성공한 셈이죠.

감기약 포장

제조물 책임법 때문에, 이런 포장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사용자를 배려하는 디자인을 볼 때면, “좋은 디자인이란 사랑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감기 걸려 정신없지만, 몇 자 적어봅니다.

책: 쿨 미디어? 핫 미디어?

November 6th, 2008

소크라테스는 적당한 사례를 들어 상대를 설득하는 방법을 즐겨 사용했다. 이것은 흔히 ‘산파술(maieutke)’이라고 부르는 소크라테스의 대화술 비결이다. 산파술은 한마디로 ‘상식에 속하는 의견을 하나 골라잡은 다음, 그 의견이 거짓이 될 수 있는 예를 찾아내 그 상식을 수정해가는 방법’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설득의 논리학

소크라테스는 대화로써 가르침을 설파하는 데 능했습니다. 말에 능한 그였기 때문인지, 소크라테스는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의 사고로 볼 때, 책이라는 것은 지식의 창고인데, 소크라테스가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니, 신기한 일이죠?

교사와 학생 간의 대화가 중요하며, 이를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파악하면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소크라테스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중략) 여기에 하나의 생각이 있으니, 심사숙고하고,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생각을 수정하고, 그 제한을 탐색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의견을 제시할 때, 듣는 사람은 말을 멈추게 하고 질문을 하며 밑바탕이 되는 가정을 조사할 수 있다. 책 속에는 저자가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대답할 수 없는 책에 어떻게 의문을 제기하겠는가? 바로 이 점이 소크라테스를 괴롭힌 것이다. 

생각있는 디자인(강조는 개인적으로 함)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을 남긴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를 핫미디어와 쿨미디어로 구분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핫미디어는 영화나 라디오처럼 인간의 한가지 감각, 즉 눈이나 귀에 의존하는 미디어를 말합니다. 즉, 대중의 참여를 제한하는 성격이 있죠. 이에 반해 쿨미디어는 메시지를 수신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쿨미디어와 핫미디어의 정의에 따르면, 소크라테스트에게 ‘책’은 일종의 핫미디어, 즉 저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전파하는 미디어인 셈이죠. 그렇기 때문에 화끈한 소크라테스에게 책은 기피 대상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책은 단방향 의사소통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제 독서 습관을 돌이켜 봤을 때, 읽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서 책은 핫미디어가 될 수도 쿨한 미디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무협소설이나 SF소설을 읽을 때면, 플로에 빠져 문장과 문장 사이에 생각의 호흡을 하지 않습니다. 며칠 굶은 사람처럼, 기름기가 흐르는 문장을 허겁지겁 먹어치우려고, 정신없이 문장을 씹어삼킵니다. 그렇기에 무협소설이나 SF소설을 읽고나면, 배는 부른데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을 못합니다.

반대로 한 문장, 문장 사이에 생각의 호흡이 무척이나 긴 책들이 있습니다. 장르에 따라서 생각의 호흡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대체로 두 번째 읽는 책이 호흡이 길어지죠. 처음 읽었을 때 그 뜻을 모르고 넘어갔지만, 책이 발산하는 매력에 이끌려, 두 번째 책을 집어 들었을 때는 한 문장 한 문장을 꼭꼭 씹어 삼킵니다. 이런 책들은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나서도 한 동안 뇌리에 상쾌한 책맛이 남습니다.

저의 독서 습관을 보면, 책이란 미디어는 독서 태도에 따라서 냉탕과 온탕 사이를 왔다갔다 합니다.

단군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이 출판시장에 회자된다고 합니다. 전 책을 많이 사는 독자이기에, 이 말을 몸으로 느끼지 못한지만 반성적 사고를 통해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불황을 타계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출판을 하려고 하고, 아울러 기술의 발달로 ‘종이책=책’이라는  공식은 깨졌습니다.

때로는 eBook을 구매할 때도 있지만, 전 컴퓨터로 책을 읽을 땐 종이책을 읽을 때만큼 즐겁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종이라는 미디어가 주는 포근함과 집중력을, 컴퓨터라는 미디어가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책은 종이라는 미디어의 특성상 핫미디어일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IT기술의 발달로 책은 이제 쿨미디어로 변화될 것입니다.

다양한 미디어로 변해서, 책이 쿨미디어로 변할 가능성이 많아진다고 해도, 책을 읽는 독서습관이 쿨하지 않다면, 책은 뜨겁다 못해 불타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

오늘날의 종이는 미디어의 주역에서 내려와 실무적인 임무에서 해방된 덕분에 다시 본래의 ‘물질’로서 매력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디자인의 디자인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만남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만남

‘에’와 ‘에서’를 잘 구별해서 쓰시나요?

October 31st, 2008

한국어는 조사를 잘 살려서 써야 그 맛이 제대로 나죠. 말로써 대화를 하는 경우, 강아지떡처럼 말해도 찰떡처럼 들을 수 있는 뛰어난 교정능력을 갖춘 한국어 청자라면, 토씨를 조금 틀려도 문제가 없지만. 글로써 내 의사를 표현할 때는, 휘발성이 아니기 때문에 토씨를 잘 골라서 써야합니다.

특히, 미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은/는’과 ‘이/가’를 잘 구별하거나, 오늘의 주제인 ‘에’와 ‘에서’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게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도 쉽지 않습니다. 토씨에 대해서 잘 정리된 책으로 나의 한국어 바로쓰기 노트를 추천드립니다. 유명한 책이어서 읽으신 분들도 무척 많지만요.

이 책의 맛보기로서, 이 책에서 설명하는 ‘에’와 ‘에서’의 용례를 설명 드리죠. 언제 ‘~에’를 쓰고, 언제 ‘~에서’를 쓸까요?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산유화

위 시는 김소월 시인의 산유화입니다. 참~ 한국어가 맛깔스럽게 표현된 시입니다. 시를 많이 읽지 않지만 김소월 시인의 시는 참 좋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 위 시에서 나오는 “산에 피는 꽃은”과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를 통해서, ‘~에’와 ‘~에서’의 차이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움직일 수 없는 꽃이 주체인 경우에는 ‘에’를 썼고, 자유로운 주체인 새에는 ‘에서’를 썼습니다. 즉, 정적이거나 대상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조사 ‘에’를 쓰고, 동적인 활동이 일어날 때는 ‘에서’를 쓰는 거죠. 예를 몇 가지 살펴 보면, 그 뜻이 더욱 명확해지죠.

  • 운동장에서 달린다. (괜찮음)
  • 운동장에 달린다. (이상함)
  • 책상에는 책이 놓여 있다. (괜찮음)
  • 책상에서는 책이  놓여 있다. (이상함)

어떠세요?  앞에서 말씀드린 논리를 염두해 두시면, 조사 ‘에’와 ‘에서’가 헤깔헷갈리지 않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