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with Hani

로망은, 실현되리라!

문제는 경제다.

March 29th, 2012

문제는 경제다

최근에 읽은 한국 경제의 상황을 분석한 책 중에서 가장 좋았다. 문체도 내가 좋아하는 스트레이트 성이다. 특히 같은 내용을 말만 바꿔서 페이지를 늘리지 않아서 좋았다. 최근의 책들을 보면서 같은 말을 중복하는 경우를 많이 봐서, 이점이 특히 눈에 들어온 것 같다.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책에서 인상 깊은 구절을 뽑자면 한국경제의 현실을 열거한 아래 문단이다.

서민과 젊은이를 못살게 들들 볶아대는 나라는 없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OECD의 각종 자료를 분석해보면 이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비정규직 비율 세계 최고 수준, 극심한 청년 실업, 자살률 1위, 출산율 세계 188개국 가운데 186위, 고령화 속도 세계 1위, 세계 최고의 산업재해율, OECD 최장 노동시간, 소득대비 세계최고 수준의 주택가격, 경제력대비 지나치게 높은 생활 물가, 저임금 비율 OECD 1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 세계 1위, 급등하는 빈부격차, 조세와 재정의 빈부격차 시정 효과 OECD 꼴찌, 공공 사회복지 지출 세계 꼴찌, 대학 등록금 세계 1위, 고교와 대학의 사립 비율 OECD 1위 등

아무튼 대한민국은 앞으로든 뒤로든 항상 순위권이다.

가짜 완벽주의에서 벗어나야 이루는 게 있다

March 28th, 2012

초등학교 1학년 때 한참 한글을 배울 때 일이다. 학교에서는 네모 칸이 쳐진 공책에 단어나 문장을 써오는 숙제를 내주었다. 글자를 잘 써가고 싶은 마음에 정성을 다해서 한 글자 한 글자 씩 썼던 것 같다. 고사리 손으로 혼신을 다해 글자를 써 내려가다 몇 자 쓰지 못하고 지우개로 지우고 마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제 막 한글을 배워서 쓰기 시작했으니 교과서에 나오는 글자처럼 예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내 마음처럼 네모 반듯하게 글자가 써지지 않는 게 흡족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몇 번 씩 지우고 쓰고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종이는 너덜너덜해지고 더 이상 지울 수 없을 때, 할 수 없이 그 페이지를 찢어 버렸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나면 숙제도 끝내지 못하고 산지 며칠 되지 않은 공책은 몇 장 남지 않게 되었다.

한글공책

가짜 완벽주의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 가짜 완벽주의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필기 숙제를 완벽하게 하려고 지우고 쓰고를 무한 반복했던 내 모습이, 바로 가짜 완벽주의의 한 예다. 가짜 완벽주의에 시달리면 일의 진전이란 있을 수 없다. 배움이나 성취의 본질은 피드백이다. 피드백을 받으려면 결과에 구애받지 말고 일단 실행해야 한다. 시쳇말로 저질러 보고 그 사태를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이걸 하려면 불완전한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일 마음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가짜 완벽주의에 시달리면, 절대로 배움을 얻거나 성취하고 행복해질 수 없다.

그렇다면 진짜 완벽주의란 무엇일까? 일단 저지르고 보거나 하고 보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부족한 점이 있거나 개선할 점이 있다면 그 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진짜 완벽주의란 어떻게 보면 예술가의 자세와 비슷하다. 자신이 만든 것이나 그린 것, 아니면 쓴 것에 대해서 만족해하지 않아야 진짜 예술가다. 예술가가 자신이 창조한 것에 만족한 순간, 예술혼은 사라져버리고 결국 자기복제나 답습에 빠지고 만다.

자신의 작업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자면, 진짜 완벽주의나 가짜 완벽주의나 비슷하다. 하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시작도 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하거나 끝도 보지 않고 당장의 결과에 실망해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이 아이만도 못할 때…

March 25th, 2012

초등학교 때 책상에 금을 긋고, 짝이 금을 넘으면 철저한 응징을 가했다. 재미삼아 그런 적도 있었고, 짝이 얄미워서 그런 적도 있다. 짝이 실수로라도 넘어와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애와 어른의 차이

아이와 어른의 차이는 뭘까?

나이로 구분하면 쉬울 것 같은데, 세상을 보면 나이값을 못하는 어른도, 조숙한 애들도 많다. 이런 걸 보면 나이만으로 어른과 애를 구분할 수 없다. 어른과 애를 구분하는 쉬운 기준은, 상대방이 잘못했을 때 반응을 보는 것이다.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을 때, 상대방이 저지른 실수나 잘못 때문에 화를 불같이 내거나 처절한 응징을 가하면 애에 가깝다. 초등학생이 짝이 그어놓은 금을 넘었다고 응징을 가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른 같은 행동은, 내가 비록 잘못이 없고 상대에게 모든 책임이 있을 때 그냥 넘어가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상대방이 실수한 게 명백해도, 그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게 바로 어른의 행동이다.

아이들은 타인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지 못한다. 내가 보는 걸 다른 사람도 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눈 앞에서 사라지면 상대방도 못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내가 보는 걸 상대방이 보지 못한다는 걸 깨닫는다. 말하자면 타인의 시선은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었다고 해도, 이런 타인의 시선과 내 시선이 다르다는 걸 잊는 순간, 우리는 애들이 된다.

실수든 고의든 금 넘어왔으니까 “넌 맞아야 해!”란 논리에 지배당한다. 그래서 가끔 다 큰 어른을 상대하는데 아이랑 대화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난 당신 애가 아니거든… 난 좋은 관리자가 되고 싶었을 뿐이고

March 23rd, 2012

‘아이의 스트레스’란 책을 읽어 보면 아이가 지각과 관련해서 겪는 일화가 나온다.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는 초중고등학교 아이를 둔 엄마는 날마다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한다. 등교할 시간에 맞춰서 아이를 깨우다가 아이의 발차기에 걷어 차이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그렇게 엄마를 때린 아이는 자신이 엄마를 걷어 찼는지도 모른다. 잠결에 한 짓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맞는 것은 별 것도 아니다. 아이를 늦게 등교 시키는 엄마는, 선생님들에게 무능력하게 비춰진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가 마냥 자게 둘 수 없는 게 엄마 마음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열심히 깨워도 아이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늦게 깨우며 자게 두었다고 타박하고 깨우면 깨운다고 신경질 내고… 참 엄마 노릇하기가 쉽지 않다.

아이가 늦잠을 자서 겪는 지각의 문제는 쿨하게 생각해 보면, 아이와 선생님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물론 부모로서 늦잠 자는 아이를 그냥 두고 봐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늦잠을 자서 겪는 문제까지 부모가 해결해 줄 수 없다. 그런데 엄마들은 아이의 늦잠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본인이 떠앉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까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엄마의 책임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아이를 적당히 깨우고 나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면, 아이가 그 이후에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게 둬야 한다. 이걸 어떻게라도 해결하려고 자는 아이를 때리고 억지로 깨우려고 하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아이의 지각 때문에 발생하는 엄마와 아이의 스트레스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관리자들이 당면하는 질문이 있다. 팀원들이 겪는 문제에 어느 정도 개입하느냐의 문제다. 팀원이 겪는 문제를 잘 해결해 주겠다는 일념으로 팀원이 의사결정해서 스스로 해결할 것까지 일일이 챙기면, 관리자나 팀원 모두 힘들다. 팀원은 자기가 할 일이 있는데 관리자가 해주니 얘 취급 받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고, 관리자는 세부적인 것까지 챙길려고 하니 참 힘들다. 반대로 이런 경우가 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팀원이 알아서 일하라고 시키는 경우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방법인데, 이또한 팀원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관리자가 알아서 막아줘야 할 것을, 실무를 하면서 챙기려니 힘들다.

아이나 엄마가 서로의 문제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좋은 방법은, 적당한 객관화와 개입이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조직의 규모와 관계없이 관리를 한다면 어떤 수준으로 객관화하고 개입하는지 살펴보자. 조금 더 나은 관리자가 될 방법이 보일지도 모른다.